꽃보다 홍성 (5)
ㅡ 저기 잠깐만요

어젯밤 홍성에 강의가 있었다. 돈이란 무엇인가. '지역화폐' 준비를 위한 강의였다. 어제는 8번째 강의 였다. 서울 해방촌에서 지역화폐를 운영하는 빈마을금고, 공동체은행 ‘빈고’가 강의를 위해 홍성까지 내려왔다. 그들의 비전과 생생한 경험을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강의가 끝났고 뒷풀이가 마련됐다.

눈이 내리는 밤이었다. 중간중간 한두 사람이 떠났지만 새벽 3시까지 이어진 자리. 겨울밤이 깊어갔다. 농촌에는 야간 택시가 없다. 잠을 자야할 시간에는 운전자도 손님도 잠드는 농촌의 밤, 자연의 규칙을 따르는 농촌의 밤. 인간적인 밤이었다. 차 있는 사람이 차 없는 사람의 귀가를 도왔다.

1시쯤, 어느 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동이형이 데려다주기 위해 같이 일어섰다. 형동이형은 새신랑이다. 인천 사람인데 귀촌한지 4개월이 되었다. 아직은 직장을 다니지만 농사를 꿈꾸고 있다. 덩치만큼 마음도 큰 형이다. 20분 후, 형에게 전화가 왔다.
“동호야, 차가 빠졌어.” 나를 포함한 건실한 남자 5명이 출동했다. 모닝을 타고 출동했으니 <모닝 특공대>라 칭한다. 

홍성에는 지난 사흘 동안 눈이 내렸다. 실핏줄 같은 농촌 길. 다행히 해가 있는 낮에 눈이 다 녹았다. 간혹 그늘이 지는 곳은 눈이 녹지 못했다. 형동이형 차는 그곳에 차가 빠져있었다.

함께 밀어봅시다. 어둠 속에서 어느 분이 제안을 했다. 하나 둘 셋. ‘으다다다다다-‘ 독수리 5형제는 왜 5명인가. 협동조합을 세우는데는 왜 5명이 필요한가. 손가락은 왜 5개인가. 오늘 그답을 깨달았다. 차가 빠져나왔다. 너무나 쉽게. 모닝 특공대는 살짝 허망한 마음마저 느꼈다.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눈덮인 야경도 보고 좋네요.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분위기. 하지만 차는 바로 다시 빠졌다. 그래도 사람들 있는 곳에서 빠져서 다행이다. 다시 미시죠. 아까 그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하나 둘 셋. ‘웨엥-‘ 헛도는 바퀴. 이번 빠짐은 좀 진지한 걸.

하나 둘 셋! 웨엥-
하나 둘 셋~ 웨엥ㅡ

고무 타는 냄새가 난다. 영하 10도를 넘었지만 타이어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나는야 명색이 항공기 정비사 출신. 지금 이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잠깐 한박자 쉬었다 하시죠. 타이어가 과열되었어요. 터질 수가 있습니다.”
잠깐 쉴겸 작전타임. 상황을 살폈다. 눈을 치워냈고 흙을 메웠다.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다시 힘을 합쳐 보시죠. 하나 둘 셋! 와다다다다다다. 차가 조금씩 움직였다. 그 순간. 엔진소리가 새벽의 고요를 가르던 그 순간. 나는 보았다. 삽질은 군인만 하는 게 아니었다. 자동차도 땅을 팠다. 그것도 매우 잘 팠다. 그건 마치 우리 할머니네 똥개 백구가 똥을 싸고 땅을 파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동차도 흙을 뒤로 파날렸다. 퍼더더더덕. 퍼날라가는 진흙.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타이어 뒤에 섰는가. 어둠속에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하나 둘 ..."
… 저기 잠깐만요.
퍼더더더덕.

----------------------------------------
* 지역화폐는 소규모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화폐이다.

어렸을 때 용돈은 저금해야 한다고 들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이렇게 배웠다. 은행에 저축된 돈으로 기업은 대출을 받는다. 그 돈으로 투자를 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월급을 받으면 은행에 저축하거나 펀드에 투자했다. 오늘날 경제 시스템은 내가 듣던 이야기와는 달라졌다. 은행에 있는 돈, 대부분을 재벌기업이 빌린다. 재벌은 대출받은 돈을 사회투자가 아닌 자기들 잇속 챙기기 위해 쓴다. 그것들은 대부분 비윤리적인 일이다. 자신들을 위한 편법을 만드는 로비자금에 돈을 쓴다. 쌍용차 부당해고가 정당했다고 말한 대법원. 슬프다. 원전을 세우는 돈도 무기를 만드는 돈도 내가 저금한 돈에서 시작되고 있다. 팔지 못하는 깡통 집을 가진 부모님 세대. 평생을 벌어도 사지 못할 집값. 그 부동산 거품을 물려받는 우리. 내가 투자라고 생각했던 행동은 사실 투기였다. 나도 모르게 사회 문제를 만들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피를 돈이라고 했을 때, 지금 우리 사회의 혈액순환에는 문제가 있다. 지역화폐는 돈이 어느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는 힘을 지녔다. 이웃과 이웃 사이에서, 지역 공동체 안에서 순환되는 돈이다.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힘을 가진 돈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돈이다.

홍성차가 눈길에 빠졌다.


충남 홍성흔적



충남 홍성 홍동 갓골


<둘이서 내 고향>이 무엇이더냐!

(당장 호미 들고 밭이고 논이고 모조리 갈아버릴 기세로 힘차게 읽어보자. 므핫)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6.7%(2010년 기준)! 우리가 먹는 음식의 70%는 외국에서 왔다!!
정부는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선언하고 있다. (쌀을 빼면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3.7%다.)
수입 농산물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밥상, 이대로 괜찮은가. 우리의 몸, 안녕들 하신가.


쓰고 버리는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우리의 몸이 된다는 걸 잊지말자.
계속해서 증가하는 암발생율과 성인병, 각종 희귀병... 스트레스와 운동부족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농업은 어쩌다 외국 농산물에 밥상의 70%를 넘겨주는 굴욕을 당하게 되었을까.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답은 무관심이었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사이는 유통이라는 이름으로
안드로메다처럼 멀어져버린 사이, 유통의 단계만 길어진 게 아니라 마음의 거리까지 멀어져 버린 것이다.

농사의 가치와 농민도 도시민도 결국은 같은 공동체라는 의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에 맞서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Think globally, act locally
- 농(農)적가치의 확산과 지역 공동체 재생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농촌은 무너지고 있다.
농촌의 인구는 줄고 있고, 농민의 고령화 문제는 도시민들에게는 연일 미디어에서 나오는 '자살 순위 1위!' 문제처럼 무뎌져버린 사회 문제다. 농촌 붕괴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농업 정책을 보자. 우리의 정책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때부터... 사실 잘 모르겠다. 미안하다. 어쨌든 현재로 돌아와 보자. 농촌 붕괴를 부르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소득이다. '농가 80% 입에 겨우 풀칠...' 한겨레 기사를 검색해보자. 두번째 문제는 기본 인프라(문화, 교육, 의료) 부족 문제이다. '젊은이들의 농촌 기피현상...'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니, 그렇다면 농민들의 소득이 높아지고, 학교/병원/극장 같은 인프라가 쭉쭉 들어서면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닌가? 문제 해결!? 아니다. 그게 본질이 아니다.


- '도시 경제에 종속된' 지역

소득향상으로 농촌지역의 붕괴를 막을 수 있을까. 지역민 삶의 질이 향상 될 수 있을까. 뜬금없지만 경제 이야기를 해보자. 경제에서 돈은 돌고 도는 피와 같은 존재다. 피는 우리 몸을 돌며 영양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만약 내 피가 어딘가에서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면? 수혈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당연히 피가 어디서, 왜 새고 있는지 원인을 보아야 한다.

지역에서의 돈, 대부분은 대형마트, 프랜차이즈 등을 통해 도시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 돈의 대부분은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돈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 함께 걸어가야 할 도시와 지역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농촌의 문제는 분명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민도 함께 고민해야 할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 (아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먹을 안전한 먹거리,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자연환경과 우리 고유의 전통이 보존될 수 있는 공간, 그곳은 어디일까.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그곳이 박물관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유기농의 메카 충남 홍성군의 홍동. 이곳에선 2000년대 후반부터 주민들에 의해 지역공동체 만들기가 시작됐다. 빵집, 술집, 목공실, 출판사, 헌책방, 도서관 등 수십개의 공동체 사업이 홍동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덕분에 홍동은 다른 지역과 다르게 인구가 증가하였다. 인구증가는 지역활동을 증가시켰다. 또 이것은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리고 다시 인구증가의 선순환을 이루어 냈다.

홍동은 지역에서 필요한 일을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냄으로 외부에서 유입된 돈이 다시 지역에 쓰이는 '순환적 경제시스템'을 구축해내고있다.


- 그래서 <둘이서 내고향>다큐제작 프로젝트는...

우리는 농촌의 문제를 농민 개개인 판로의 지엽적인 문제로만 국한하지 않고, 조금 더 넓은 차원에서 접근해보고자 한다. 지역의 유기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홍성의 단체, 농민조합 등, 한 곳씩 그리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조명해보려 한다. (물론 홍동 분들은 우리가 이런 계획을 갖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지역 공동체 차원의 유기적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우리가 내린 답이 정말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둘이서 내 고향> 다큐멘터리 제작 프로젝트는 그런 의미에서는 사적이고 단순한 호기심이다. 물론, 우리의 추론이 틀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번 <둘이서 내 고향>프로젝트는 그전 프로젝트 세계여행! 이런 도전의 느낌보다는 실험에 가까운 느낌이다. 가슴 설레는 이 과정과 결과,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함께 나눠보고 싶다.


총 10부작 200분 가량의 다큐를 제작하려 한다.
서울시 사회적 경제 아이디어 경진대회(wiki 서울)에 공모했다. 그 결과는 이번 달 말에 나온다.
망하면 망하는대로, 재미없으면... 재미없는대로... 최소한 후회가 남지는 않도록 해보겠다.

두고보아주시라!
Viva la Vida! 


* '요즘 뭐하고 지내남'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문화라 한다. 우리 문화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일반화된 사실이다. 가정, 세대 간의 소통, 양극화, 교육, 인권 문제들이 폭력, 자살, 우울증 등 여러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으니까. 지금 우리 국민의 삶은 하루하루 소모되고 있는 삶, 소유와 소비로써만 살아있음을 느끼도록 강요받는 삶, 에너지 음료를 마셔야만 버틸 수 있는 삶으로 변해가고 있다. 성형, 대출, 게임, 병원(디스크, 치질 등 피로 관련 질환) 등이 주를 이루고 있는 전철 광고만 봐도 알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나는 휴식 문화가 문화를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첫 단추라고 생각했다. 문화를 바꾸는 건 사람이니까. 술, 혹은 비싼 돈을 들여야만 즐길 수 있는 취미, TV, 유흥업소 따위의 소모적인 여가가 아니라, 활력을 충전해주는 휴식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변화된 한 사람, 한 사람의 빛이 우리 사회에서 공동 선을 이뤄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7년의 군 생활. 나는 전역을 했고,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삶의 모습은 생각의 울타리 너머에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싶었다.

* 279일의 세계

- 나마스떼(내 안의 빛이 당신 안의 빛에 인사한다는 뜻의 힌두 인사). 답은 모두에게 있었다.
그렇게 떠난 여행. 그 울타리 밖에서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오만한 내 모습이었다. 개발도상국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후진국이라는 단어와 함께 내게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가난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 ‘의식 수준이 부족한 사람들'. 나도 모르게 그들을 도와줘야 할 대상, 가르쳐줘야 할 대상이라는, 그 사람들 위에 서려는 그릇된 연민이 잠재되어 있던 것이다. 

그들보다 잘난 사람이라고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들 삶에 그림자를 드리울 자격이, 아니 누구에게도 그럴 자격은 없었다. 그들에겐 그들의 빛이 있었다. 빛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었다. GDP라는 둥, 돈이라는 둥, 자본주의가 만들어준 기준에 눈이 어두워진 내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진실로 누군가를 돕고자 할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진 빛을 키워주는 일이라는 걸 느꼈다. 우리의 빛은 그들에게 그림자를 만들 수 있을테니.

- 돈이라는 이름의 잣대. 희망은 지역에 있었다.
 몇 년 전, 서점가에는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는 책이 흥행했다. 나도 세계여행을 하며 자본주의를 만났다. 세계화는 효율과 수익률이라는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었다. 고유의 색을 잃고 비슷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도시들. 스타벅스, 맥도날드, 피자헛 등 프랜차이즈가 세계를 단순화 해가는 모습.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화려한 광고. 서로를 ATM(현금 자동 인출기)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IT 혁명으로 국가 간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 무한경쟁의 시대를 예고한 책 <세계는 평평하다>의 말처럼, 암이 몸을 잠식해가듯 가히 세계화는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나마 지방에서 그 나라의 고유문화를 만날 수 있었다. 빈약한 여행에서나마 추억이라는 이름의 기억들은 스타벅스 매장에 있지 않았다. 다른 이를 치유한다는 철학의 태국 마사지 속에, 밤이면 온 가족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몽골 양치기의 집 안에, 실크로드의 길목이라는 이란의 오랜 바자르(시장) 안에 있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공멸이 아닌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있다면, 답은 지역에 있다고 생각했다.

- 문제는 사회 시스템이 아닐까
유대인, 독일인, 프랑스인 친구들을 만났을 때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물론 내가 그 친구들과 나눈 시간은 정말 작은 일 편일 뿐이지만). 선진국의 친구들도 개개인으로 봤을 땐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프랑스 친구 집에서 머물 때의 일이다. 친구는 독립했었지만 지금은 남자친구와 함께 다시 부모님과 살고 있었다. 신기했던 건 남자친구의 모습이다. 모든 가족이 늦잠을 잤지만, 특히 더(10시까지) 늦잠을 잤던 남자친구, 하릴없이 하루를 보내거나 컴퓨터를 하던 남자친구, 어느 날 동네 병원에 면접을 보러 가던 남자친구. 상상해 보았다. 딸의 남편이 되고 싶다는 사람이 비정규직이라면,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뭐라고 말할까.
에티오피아에서 함께 여행했던 독일 친구, 면직물 회사에 다니는 그 친구는 휴가를 온 거라 했다. 일이 재밌느냐 했더니 그냥 다닌다고 했다. 속으로 '독일 사람은 모두 자기 꿈의 직장을 다닐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군.’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업무 후 여가생활, 연 6주 휴가를 통해 삶의 행복을 찾는다고 했다.
프랑스 리옹에서 일하던 친구의 하숙집에 놀러 갔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집 1층에서 환자를 받는 의사였다. 그정도면 프랑스 사회에서도 중산층 이상은 되지 않을까 생각됐다. 어느 날 시간관리라는 개념을 설명해주게 됐는데 'Unbelievable'을 외치며 한국사람들은 이런 걸 모두 아냐고 내게 물었다. 난 아주머니가 시간관리 개념을 모른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물론 내가 자기 개발을 '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개발의 의미가 여가생활에 있는 사회. 당장 직장이 없더라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 문제는 사회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런던에는 어디에나 공간이 있다. 공원, 광장, 박물관, 미술관, 거리. 그곳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 미술전을 열 수도 있고, 광장에 나가 노래를 부르거나,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면 분필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누구도 제재하지 않는다. 다른 이에게 피해가 없다면. 이런 공간이 있기에 서로가 만나 이해할 수 있고 섞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스 광장에서 서양철학이 시작된 것처럼, 강대한 로마제국과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처럼.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의 문제도 사람을 만드는 환경(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맛을 잃은 소금, 존재 가치를 잃은 자본
불신 사회, 경쟁 사회, 황금만능 사회. 우리 사회는 왜 가치를 잃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돈이 제일 우선 가치인 사회를 살아가고 있을까. 문제가 돈이지만 원인도 돈(자본)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피와 같다. 피가 순환되지 못하면 죽게 된다. 순환되지 않는 돈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눠 가질 수 있는 파이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돈을 가진자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살고 있지만, 그외 절대 다수는 돈 때문에 서로를 속이고, 내가 살아야한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을 밟아야만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중국산을 국내산이라 속여서 판매하는 이웃만 탓할게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만든 체계를 돌아봐야 한다. 또 우리가 생활 서비스(의, 식, 주, 에너지, 건강, 교육, 정보, 교통, 오락)를 과도하게 외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이 기업의 생산물을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업의 물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인간인, 과거 식민의 삶이 되고 있는게 아닐까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또 해법은 돈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한 돈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돈, 먹고 살 걱정을 덜어주는 돈,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돈, 지역 순환 형 경제 체제(지역화)를 만드는 돈이 우리 문화를 바꾸는 바탕이 될거라 믿는다. 그 단초인 마을기업을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18개월로 계획한 여행 중 9개월째에 돌아올 결심을 했다. 세계는 넓었지만 내가 살아가고 싶은 세계가 생겼으니까. 올 봄 마을기업을 직접 보자는 요량으로 3개월 전국일주를 계획했다. 계획 중에 희망제작소 마을기업 부문(뿌리센터) 인턴 공지를 보았고 감사하게도 합격됐다.

이제 한걸음 딛고 있을 뿐이지만, 나름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