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시작함과 동시에 나는 책을 펴내고 싶었다. 내게 글은 독자와 연결되는 수단이다.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지 않는 한 자아를 표현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는 인터넷상에 쓰는 게 아니라면 나는 이릭조차 적지 않는다. 나 자신만을 위한 글쓰기는 나에게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행위다. - 줄리코헨


"작가에게 독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첫째, 그것은 글에 대한 기술을 익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흔히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들은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속한 독서모임 회원들은 내가 작가라서 책 읽는 것이 다르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뭔가 굉장한 책을 읽기 시장하면, 여느 독자들처럼 나도 모르게 이끌려간다! 작가이기도 하면서 대단히 존경받는 편집자인 다이앤 피어슨은, 글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는 작가들에게는 닥치는 대로 뭐든지 읽으라는 충고를 해준다." ㅡ 케이티 포드


"창의력의 본질적인 요소는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이전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경험들의 융화다. 새롭고, 색다르며, 신기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토대로서 작용하며, 다른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어떤 패턴에 대한 인식이 바로 창의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정신분석학자인 융이 말한 직관이다." - 케슬러

좀더 쉽게 말하자면, 창의력은 이미 존재하고 잇는 것들을 갑자기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신발의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하기 시작한 것이 겨우 1세기도 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창의력을 높이기 위한 일들은 대부분 두뇌활동을 기반으로 한다. 익숙한 개념들을 더해 전혀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내거나 전에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개념들ㅇ르 곰곰이 뜯어보는 식이다. 즉 ' 생각 불가능한 것을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전의 작가와 화가들은 각자의 개성이 아닌 기술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소설가든, 극자가든, 시인이든, 모든 작가들을 자아탐구와 정체성에 관련된 독창성으로 평가한다. 때문에 우리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글은 진실이 묻어나는 개성적인 글이다. 즉 작가의 개인적인 인생관을 보여주는 글이다." - 앤소니 스토


'창의성'이라는 땅을 잘 경작하려면 항상 수첩을 들고 다녀라. 그리고 날씨, 가족 모임, 버스나 전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등 당신이 겪는 일상의 일들을 메모하라. 늘 주변을 잘 보고, 듣고, 관찰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해라.

어떤 장소나 경험이라도 창의성이라는 열매를 맺게 하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 하지만 밑거름을 제대로 깔아 땅을 기름지게 만들려면 작가의 태도가 중요하다. 작가는 끊임없이 보고, 듣고, 신경을 곤두세워서 이야기의 씨앗이 될 만한 것들을 발견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화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사람, 자연, 사물 등에 고정관념을 갖지 말고 마음을 활짝 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생생한 묘사는 글에 진실과 감동을 더해주기 때문에 하늘, 새, 꽃, 사람의 얼굴 등을 자세하고 꼼꼼하게 관찰해야 한다. 또한 필요하다면 쓰레기통도 뒤지고, 똑같은 장소나 사물이라도,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사람들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그 침묵 속에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

화가나 사진작가처럼 이미지 뱅크를 만들라. 일기도 쓰고, 흥미로운 생각이나 사건, 강렬하거나 복잡한 감정이 떠오르면 공책을 펼쳐라. 당신의 공책은 장래의 글을 위한 기름진 비료가 되어줄 것이다."


작가는 주어진 시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차분히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해주는 오직 하나 뿐인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을 쓰다보면 별로 고민하지 않고 쉽게 생각나는 단어가 몇 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한계를 발견했다면, 처음엔 두세 문장씩, 그 다음에는 한두 문단씩 연습해나가라. 이런 기본적인 훈련을 마칠 때까지, 처음 시작할 때의 2배 이상 연습하도록 하라." - 도로시아 브랜드


그리고 쓸거리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늘 열심히 공부하라. 편지나 일기도 많이 쓰도록 하고, 당신이 하는 일이 글 쓰는 일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노력하라. - 앤 세바


"나는 새벽에 글이 가장 잘 써진다. 하지만 만약 글이 잘 써지는 경우, 아침 6시에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꼬박 스무 시간 동안 글을 쓴 후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똑같은 일정을 반복하는 생활도 할  수 있다. 나는 글을 쓸 때 전혀 다른 세계에 가 있으며, 다시 그 세계로 들어가기만을 원하기 때문에 피곤함 따위는 초월한 상태다." - 트리샤 애슐리


151. 나는 글의 주제에 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글이 살아 있는 한 주제가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픽션은 우리가 겪는 경험의 전체 영역을 포함한다. 대단치 않은 주제라도 심오한 철학이 뒷받침되어 있으면, 웅장한 영웅담만큼이나 픽션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처음부터 자신이 열정적으로 부르짖고자 하는 바를 가지고, 책을 통해 나타내고 싶은 자신의 주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작가들도 있다. 반면에 글을 써나가면서 주제를 발견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막연하더라도 뭔가에 대해서 쓰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글을 써나감에 따라, 그 느낌이 무엇인지, 주제가 무엇인지를 하나씩 둘씩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케이트 그랑빌


151.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쓸수록, 좋은 글이란 화려한 기교보다 내면의 신념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 안에 세상에 들려줘야 할 뭔가가 있다는 확신은 문학적 스킬보다 더 중요하다. 독자의 관심을 붙잡는 작가들은, 독자의 옷깃을 꼭 부여잡고 '당신에게 꼭 할 말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작가들이다. - 랄프 키스


153. 자신이 잘 아는 것에 대해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관심을 가진 것에 대해 쓰는 것이다. 어떤 주제를 골랐다고 해서 무조건 글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주제를 택했다 하더라도, 그 주제를 발전시켜 다른 사람이 읽고 싶어 할 만큼 재미있고 짜임새 있는 완전한 글로 발전시켜나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 뛰어난 작가들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생각에도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만약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면, 삶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면, 당신은 솔직하고 독창적이며 독특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정말 광범위한 것들이라서 사람의 근본적인 내면에까지 도달하려면 정말 열심히 파내려가야 한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솔직하게 쓸 마음이 없다면, 철없이 방황하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어떤 의미도 남기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도로시아 브랜드


161. 일반적인 시작은, 당신에게 아이디어를 샘솟게 했던 등장인물들에 관한 단편을 시리즈로 쓰는 것이다. 부커상 수상작가인 팻 바커의 첫 소설인 <유니언 스트리트>처럼 결국은 별개지만 서로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읽기 원하는 주제에 관해 조사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작가는 문자 그대로나 상징적으로나 자신이 닿을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것만 다루어야 한다. 둘째, 주제의 가치는 그 주제 안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바가 무엇이며, 얼마나 깊이 조사할 수 있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되기를 꿈꾸기보다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어떤 게 팔릴지' 걱정하지 말고 당신이 보고 경험하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표현하라. - 웬디 페리엄



235.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모험하길 싫어해 서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책을 내기보다는(완전히 신선하거나 대중적인 수요가 있다 하더라도) 다른 출판사가 이미 세상에 내놓은 책을 따라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출판사들이 <해리포터> 원고를 거절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만약 당신의 아이디어가 출판계 종사자들에게 낯선 작품이나 새로운 시장을 목표로 삼은 것이라면, 시장 상황, 그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 그 시장의 가능성, 그리고 꼭 출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36p. 글을 쓰므로 당연히 필력이 있어야 하고, 현장에 부지런히 다니며 취재하기 때문에 민첩성과 순발력도 필요하다. 또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므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애정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따뜻한 인간미와 감수성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가득하고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품은 작가라면 독자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72p. 자유기고가 지망생이라면 블로그의 글을 통해 전문 자유기고가처럼 보여야 한다. 글의 내용은 물론이고 메뉴구성도 전문가의 분위기가 풍겨야 한다. 온갖 잡다한 메뉴로 어지러운 블로그는 그저 자신의 일기장, 혹은 가까운 친구들끼리 소식을 주고받는 아마추어 공간일 뿐이다. 잘 정돈된 자유기고가의 블로그를 참고해서 전문가의 향기가 나는 블로그를 만들어 보자.


76. 원칙적으로 자유기고가는 많은 경험과 경력을 쌓은 후 시작할 수 있지만, 초보자라도 자신감과 열정으로 무장했다면 못 할 것도 없다. 불가능하고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이거나 한두 번 해보고 만 사람들이다.


140. 자유기고가는 해당 매체가 원하는 방향 및 목적에 맞는 글을 써야 한다. 무엇보다 글 속에 현장의 느낌과 감성이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고 보고 느껴야 생생한 글이 나온다. 이처럼 현장에서 새로운 풍경과 분위기를 온 몸으로 느끼고 기록한 후 돌아와서 글을 쓰는데, 자유기고가의 시선이나생각이 진솔하게 표현된 글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온다. 덧붙여 어떤 상황이나 인물을 대할 때 따뜻한 시선과 감성으로 소통한다면 글 역시 따뜻한 소통의 차구가 될 것이다.

26.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각 과정에서 부족함을 지적받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자세를 고치는 것만이 좋은 이야기꾼이 되는 비결입니다.


30.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여러분도 여러분이 실패했을 때, 그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시기 바랍니다. 운이 나빴다거나 남들이 오해한 일이라고 실패를 덮어두고 넘어간다면 똑같은 잘못을 언젠가 또 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패가 많다고 낙담하지 마십시오. 많이 실패할수록 더 좋은 작품에 근접했다고 믿으셨으면 합니다.


45. 더 많은 매혹을 느끼도록 인류를 이끌지 않았을까요. 삶은 한 번뿐이지만, 이야기는 천일 하고도 하루를 보내도 이어질 만큼 무한하니까요. 다른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이야기를 통해 그 삶을 상상하고 체험할 수 있으니까요.


49.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을 씻어내고 가장 빨리 그리고 깊이 사귀는 방법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50. 어떻게 하면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것이 <김탁환의 쉐이크>가 끝날 때까지 여러분과 제가 함께 고민할 문제입니다.


55.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느냐 하는 문제가 인간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하는 문제와 깊이 연관되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이야기란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과 내용 속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56. 결론부터 당겨 말하자면, 저는 좋은 이야기꾼이 되기 위해서는 오감 훈련을 반드시 열심히 해야 하고, 그 훈련이 어느 정도 숙달되면 '육감'을 개발하는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68. 중요한 사실은 이야기에는 항상 어떤 감정이 얹힌다는 것이고, 만드는 쪽에서나 즐기는 쪽에서나 이야기를 통해 감정을 느끼려고 한다는 겁니다.

 … 이야기를 만들 때 가장 먼저 정해야 하는 것이 내가 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어떤 느낌을 줄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뜨거운 느낌인가 차가운 느낌인가. 뜨겁다면 희로애락 중에 어느 것인가. 차갑다면 추리, 풍자 등 여러 느낌 중 또 어느 것인가.


71. 움직이도록 만들려고 마음을 흔들면, 그 흔들림으로 인해 움직이는 이도 있지만 흔들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이도 적지 않다는 것을


73. 이야기를 읽거나 보면서 인간은 흉내를 냅니다. 처음엔 머릿속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등장인물 -대부분 주인공일 가능성이 큽니다.-의 행동을 상상하며 따라가게 되지요. 이야기를 만들 때, 특히 소설을 쓸 때는 독자들을 어떤 등장인물의 어깨에 태울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75. 머릿속으로 흉내내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감정이지요.


76. 그러므로 이야기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MOVE'나 'CHANGE'라기 보다는 'SHAKE'가 아닐까 합니다. 기존에 자신이 해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감정과 행동의 흔들림!


77. 흔들림 없는 영혼은 곧장 앞만 보며 나아가지만, 살짝이라도 흔들린 영혼은 자기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되살피게 됩니다. 흔히 말해 자신의 생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지요. 


21.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생각의 힘 덕택이다. 그런데 생각의 힘은 언어에서 나온다. 사람은 언어를 활용해서 체계적이고 깊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 


34. 길이가 짧은 문장은 당연히 간결하다. 전달하려는 뜻도 명료해 보인다. 그렇게 읽힌다. 그러므로 장점이 많다. 문장 자체가 생각의 단위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 문장으로는 가급적 하나의 사실이나 생각만 전달하는 것이 좋다.


36. 짧게 끊어 쓰면 좋을 텐데 아직도 많은 이들은 문장을 길게 늘여 빼서 쓰는 습관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길게 써야 문장의 품격이 높아진다는 그릇된 인식이 큰 몫을 차지한다. 특히 법률 관련 문건들의 경우는 대단히 심각하다. 하지만 문장의 권위는 길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둘째, 모양이나 뜻이 같은 말을 겹쳐 사용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싸매고 아무리 애를 쓰며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아다'와 같은 문장이 그것이다. '머리를 싸매고', '애를 쓰며',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와 같은 말은 모양만 다를 뿐 뜻은 비슷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았다'라고 써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전달하려는 뜻을 힘주어 강조하거나 멋스럽게 표현하느라고 문장을 길게 늘여 쓴 예인데 이는 반드시 버려야 할 습관이다.


셋째,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생각이나 사실을 마구 늘어놓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친구와 함께 강가로 낚시를 하러 갔는데 수심이 아주 깊은 그 강에는 큰 물고기가 아주 많다고 들었지만 저녁 무렵에 아주 큰 친구 아버지의 어망에는 손바닥만 한 붕어 세 마리만 잡은 짧은 낚싯대였다'와 같은 문장이 그것이다. 떠오르는 생각을 정돈하지 않고 쓰면 문장이 길어진다. 주어와 서술어가 뒤죽박죽인 비문이 되기도 쉽다. 이 또한 문장을 간결하게 써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63. '떡두꺼비 같은 아들'은 '달덩이 같은 딸'이나 '꽃처럼 예쁜 여자'처럼 우리 눈에 익숙해진 꾸밈말이다. 이런 표현을 '죽은 비유'라고 하는데, 쓰지 않는게 차라리 낫다. 

이에 비하면 '떡두꺼비 같은 딸'이나 '달덩이 같은 아들'은 좀 우스꽝스럽지만 적어도 새로운 맛은 있다.


77. '테레사는 밤 1시 반경 집에 왔다. 욕실에 들어가 파자마를 입고 토마스의 곁에 누웠다. 토마스는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얼굴 위로 몸을 기울였다. 그의 얼굴에 키스를 했다. 그녀는 그의 머리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코를 실룩거리며 냄새를 몇 번이고 맡았다. 마치 개처럼 그녀는 그의 머리를 사방으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알아냈다.'


예문은 모두 아홉 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테레사'라고 하는 인물이 집으로 돌아와서 벌이는 행동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묘사하고 있는데 그 문체가 매우 간결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예문에는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접속부사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대신 이걸 읽는 독자는 작가의 의도대로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에 막힘없이 몰입할 수 있다. 이런 걸 '문체의 효과'라고 한다.


85. 문장도 예외가 아니다. 문법에 맞도록 쓰는 거야 당연히 중요하지만, 가급적이면 읽기 편하고 읽을수록 감칠맛이 더해지는 문장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86. 좋은 문장을 쓰려면 이 조사와 어미를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88. '~에게'와 '~에'도 가려 써야 한다. 조사 '~에게'는 '친구에게', '강아지에게'와 같이 대상이 유정물인 경우에만 쓴다. 반면 '화분에 물을 주었다'와 같이 대상이 무정물일 때는 '~에게'가 아니라 '~에'를 써야 어법에 맞는다.


'어떻게 하면 풍부한 느낌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구절의 '~며'는 모음 또는 'ㄹ'로 끝나는 어간에 붙어서 둘 이상의 사물, 동작, 상태 등을 나열할 때 쓰는 연결어미다. '느낌을 가지'는 것은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킬 뿐 둘 이상을 나열하는 뜻은 없다. '가지며'는 '가지고'나 '갖고'로 바꿔 써야 옳다.


99. 사실 글이란 본디 메마르고 딱딱한 것이어서 읽을 맛이 나는 문장을 쓰는 건 생각 이상으로 어렵다. 그런데 문장에 간장을 붓거나 마늘씨를 찧어 넣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리듬감 있게 읽을 수 있는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문장의 맛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104. 모양이 같은 단어나 구절을 반복해서 쓴 문장은 읽는 이의 원활한 독서행위를 방해한다. 같은 말이라도 얼마든지 변화 있게 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개성도 발휘할 수 있다. 독창적인 문체 또한 문장에 변화를 주는 데서 얻어진다.


106. 바로 다음 말을 구미지 않을 때도 반점을 쓴다. '나는 어제 내가 좋아하는 현주의 동생 며우를 만났다'라는 문장의 경우 '나'가 좋아하는 사람은 '현주'다. '나'가 좋아하는 사람이 '명주'라면 '나는 어제 내가 좋아하는, 현주의 동생 명주를 만났다'라고 써야 한다. 이처럼 반점은 전하려는 뜻까지 바꾸기도 한다.


107. '진취적 행동, 이는 청소년의 덕목이다', '정직, 이거야말로 자기발전의 원동력이다'와 같이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서 맨 앞에 둔 제시어 다음에도 반점을 쓴다. 도치된 문장 사이에도 '그러면 안 된다, 적어도 우리가 친구라면.'과 같이 쓴다.



똑같은 경우를 일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소설가라는 직업에 - 적어도 나의 경우라는 전제하에 하는 말이지만 - 이기고 지고 하는 일이란 없다. 판매 부수나, 문학상이나, 비평을 잘 받거나 못 받거나 하는 일은 뭔가를 이룩했는가의 하나의 기준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변명으로 간단하게 통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적당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원칙을 말한다면, 창작자에게 있어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은 아니다.


27.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매일 달리면서 또는 마라톤 경기를 거듭하면서 목표 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 따라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적어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왔다. …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36. 달리고 있을 때 어떤 일을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공백 속에서도 그 순간순간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온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공백 같은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은 진공을 포용할 만큼 강하지 않고, 또 한결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도 달리고 있는 나의 정신 속에 스며들어 오는 그와 같은 생각(상념)은 어디까지나 공백의 종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용이 아닌, 공백성을 축으로 해서 성립된 생각인 것이다.

37.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가지 크기의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사라져간다. 그렇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스쳐 지나서 사라져갈 뿐이다. 그리고 하늘만이 남는다. 하늘이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넓고 아득한 그릇이 존재하는 모습을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50대 후반이다. 21세기라는 것이 실제로 다가와서, 내가 정말로 50대를 맞이하게 될 줄은 젊었을 때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언젠가 21세기가 오고, (아무런 일이 없다면) 그땐 내가 50대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지만, 젊었을 때의 나에게 있어 50대의 내 모습을 떠올린다는 것은, " 사후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라"는 말을 들은 것과 같을 정도로 곤란한 일이었다.


우리 부부는 7년간의 '열린 생활'에서 '닫힌 생활'로 크게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그러한 열린 생활이 내 인생의 어느 시점에 어느 기간에 존재했던 것은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거기에서 많은 중요한 것을 배웠다. 그 시기는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종합적인 교육 기간 같은 것이었고, 나에게 있어 진정한 학교였다. 그러나 그런 생활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는 없었다. 학교라는 데는 들어가서 무언가를 배운 후에는 나와야 하는 곳이다.


65.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주위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류보다는 소설 집필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된 생활의 확립을 앞세우고 싶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특정한 누군가와의 사이라기보다 불특정 다수인 독자와의 사이에 구축되어야 할 것이었다.


이와 같은 능력(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고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들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이것은 앞서 쓴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올려간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 자극하고 지속한다. 또 자극하고 지속한다. 물론 이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라나 그만큼의 보답은 있다.


수면은 나날이 미묘하게 변화하고, 색이나 파도의 형태나 유속이 변해간다. 그리고 계절은 강을 둘러싼 식물과 동물들의 모습을 확실하게 변모시켜 간다. 여러 크기의 여러 모양의 구름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다가는 사라져가고, 강은 햇살을 받아서 그 하얀 구름이 오가는 것을 어느 때는 선명하게, 어느 때는 애매하게 수면에 비춘다. 계절에 따라서, 마치 스위치를 전환하는 것처럼 바람의 방향이 변화한다. 그 살결에 닿는 감촉과 향기와 방향으로 우리는 계절의 추이를 명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 그런 실감을 동반한 흐름 속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가 자연의 거대한 모자이크 속의 미세한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바다를 향해 흘러가다 다리 밑을 지나는 강물처럼 교환 가능한 자연현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171.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 오로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이 말을 머릿속에서 만트라처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 했다. 글자 그대로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그리하여 자기가 감지하는 세계를 되도록 좁게 한정하려고 애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겨우 3미터 정도 앞의 지면으로, 그보다 앞은 알 수 없다. 내가 당면한 세계는 기껏해야 3미터 앞에서 끝나고 잇다. 그 앞의 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늘도, 바람도, 풀도, 그 풀을 먹는 소들도, 구경꾼도, 성원도, 호수도, 소설도, 진실도, 과거도, 기억도, 나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물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3미터 앞의 지접까지 다리를 움직인다. - 그것만이 나라고 하는 인간의, 아니 아니지, 나라고 하는 기계의 작은 존재 의의인 것이다.


185. 앞에서도 썼지만,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다수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듯이 나는 쓰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지어 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쓴다고 하는 작업을 통해서 사고를 형성해간다. 다시 고쳐 씀으로써 사색을 깊게 해나간다.


187.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42킬로를 완주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나는 즐기며 평가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약간 다른 성취의 긍지를 모색해가게 될 것이다.

54. 학과를 불문하고 영어로 강의를 한다는 것을 대학들이 자랑하고 뽐내는 넋 나간 시대입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만이 아니라 지방의 산골 소도시까지 영어 간판이 범람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 정책의 잔혹성을 말할 때 두가지를 거론합니다. 첫째, 조선어 말살, 둘째, 창씨개명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민족어 경시, 훼손에 나서고 있습니다.

54. 물론 제가 이런 글을 써도 행정기관에서는 끄떡도 하지 않고, 세상도 들은 척도 안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옳은 일, 바른 말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하고 하고 또 해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이고 책무입니다. 그 바보스러운 되풀이가 쌓이고 쌓여 결국에는 잘못된 세상사가 바로잡히고, 새로운 정책이 수립되고 합니다. 그것이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69. 그 위대한 천재들의 작품을 정신 집중해 차근차근 또박또박 읽어나가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무수한 봉우리를 넘고 골짜기를 건너며 온갖 보석을 줍게 될 것입니다. 작가마다 다른 다채로운 문체, 형형색색의 소재, 각양각색의 주제, 온갖 기발한 구상, 기기묘묘한 표현 기법, 무궁무진한 상상력, 세련된 대사 처리의 효과, 과감한 생략의 역효과, 뜻밖의 상징의 감동, 살아 생동하는 무수한 인물 군상…

 그건(세계문학전집) 세계적인 천재들이 맘껏 펼치는 문학의 대향연이며, 언어의 대축제입니다. 그 잔치에서 맘껏 마시고, 취하고, 즐기십시오.

79. 천만다행하게도 어머니는 손끝이 재고 엽렵해 바느질을 잘했고, 음식 솜씨가 좋았습니다. 긴 겨울밤 어머니가 잠 못 자고 남의 집 한복을 지을 때 바늘귀에 실을 꿰어드리던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가 실을 꿰드리면 한숨 가득한 어머니 얼굴에 웃음이 어렸거든요.

81. '아아, 이런 글을 쓴 사람은 누굴까.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이보다 더 잘 쓸 수도 있다….' 저는 이런 생각에 휘말리며 그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아지랑이와 종달새가 어우러진 봄 풍경을 쓴 그 글은 제가 꼼짝할 수 없도록 잘 쓴 글이었습니다. 제가 받은 최초의 충격이었고, 시샘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몸속에서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는 최초의 발견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그런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 것인지 제 마음을 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걸 굳이 설명하자면 배고플 때 밥을 먹고 싶은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 말고, 이 세상 모든 일에 대해 각자가 하고 싶은 마음은 이런 식으로 절로 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이 동하는 일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그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실패가 없고, 후회가 없고, 그 생애는 행복합니다. 단, 사람에 따라서 그 발견의 시기가 다를 뿐, 누구나 한 가지 일에는 마음 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85. 그러나 벌교는 그런 살벌함이 전혀 없이 아름다운 풍광에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하루에 두 차례씩 들고 나는 밀물과 썰물이 신비롭기 그지없었고, 포구의 풍성하고 기나긴 갈대밭이 한없이 아름답고 포근 했으며, 철따라 날아왔다가 떠나가는 기러기 떼의 그 정연한 비행과 청아한 울음소리는 또 얼마나 신기하고 마음 맑아지는 음악이었는지 모릅니다. 첨산의 신령스러움, 징광산의 우람함, 제석산의 의연함, 그리고 20리 방죽길의 길고 긴 아득함과 중도 들판의 풍성함, 갯내음 스민 개울가 논둑에 숨은 참게를 갈대꽃대로 살금살금 유인해 잡던 그 깨소금 맛, 설한풍 속에 피던 핏빛 동백의 처연한 아름다움, 겨울밤 대나무밭 참새 사냥의 설레임, 옛날이야기가 치얼치렁 이어졌던 겨울밤 머슴들 사랑방에서 생고구마 깎아 먹던 맛과 생두부에 김치를 감아 먹던 맛, 과부인 친구 어머니의 슬프고 외로운 소복 모습을 닮았던 하얀 치자꽃, 보리며 밀 서리를 하다가 쫓기던 재미, 비 쏟아지는 여름밤 발가벗고 감나무를 타고 올랐던 단감 서리의 아슬아슬함, 이런 벌교의 평화로움과 정다움이 저를 어루만지고 안정시켜 약효 좋게 야뇨증을 치료해준 것입니다. 

96. 모든 예술가 지망생이 너나없이 갖는 의문과 회의는 '나는 과연 재능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남다른 천재성은 갖고 싶고, 확인은 되지 않고 하니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재능을 확인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닌데 자기 스스로 그 어느 분야의 예술에 끌리고, 하고 싶고, 하면 즐겁습니까? 그렇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그 분야 예술에 재능을 타고난 것입니다. 이 확인이 필요조건인 동시에 충분조건입니다. 그 재능을 믿고, 그 길로 가고 싶으면 거침없이 가십시오. 그 선택에는 아무런 실수도 하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스스로의 선택이기 때문이고, 당신 인생의 주인은 당신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설령 실패하더라도 당신은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그 아쉬움은 예술을 해오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쵯ㄴ의 노력을 다하지 못했다는 반성일 곳입니다.

문학청년 시절에 저도 초조한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또 쓰고,  신춘문예에 자꾸 낙방하고, 문예지 추천도 안 되고 하면서 저의 재능에 끝없이 회의했습니다. 그 회의가 없다면 사람일 수 없고, 발전도 있을 수 없겠지요. 그리고 그런 낙방들은 실패가 아니고 수련이고 단련입니다. 

흔히 얘기하는 교훈 중에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은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갈린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102. '내가 지난 4년 동안 변화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4년 단위로 그렇게 변해간다면 아마 40년쯤 후에는 나는 성인으로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

졸업을 앞두고 제가 학교 신문에 썼던 글의 내용입니다. 저는 그렇게 대학 생활에 만족을 표시했습니다. 비록 소설가는 못 되었지만 문학의 길은 찾았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대학 시절의 저는 대견합니다. 젊은 시간에 많이 고민하십시오. 고민 없는 젊음은 젊음이 아니고, 젊은 고민은 인생의 문을 열어줍니다.

104. 책 한권을 읽는 데 이틀 걸렸으면 이틀을, 사흘 걸렸으면 사흘을 생각하는 일에 바치십시오. 책을 읽을 때와 똑같은 집중과 관심으로 그 책에 대해 이모저모 세세하게 생각해 나가십시오. 

'왜 그런 소재를 선택했을까.'

'주제와 소재는 효과적으로 조화되어 있는가.'

'주제의 형상화는 잘 이루어져있는가.'

'사건 전개는 우연이나 조작적이지 않고 실감 있고 필연적인가.'

'구성의 허술함이나 무리는 없는가.'

'인물들의 개성과 생동감은 살아 있는가.'

'문체의 특성은 무엇인가.'

'감각과 묘사력은 특색이 있는가.'

'결말 처리는 효과적이었는가.'

'소설로서 성취도는 어느 정도인가.'

이런 것들을 소가 눈 지그시 감고 느긋하게 되새김질하듯 차근차근 곱씹고 되씹으며 따져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작품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고 비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 스스로 하는 가장 효과가 큰 소설에 대한 종합 공부입니다.

105. 그런데 이 지접에서 한 가지 필히 확인할 사실이 있습니다. 소설에 대한 당신의 전체적 감상입니다. … '아, 잘 썼다. 그치만 별것 아니네.' '나도 딴 방법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어.' 당신이 소설을 쓸 수 있으려면 아무리 좋은 작품을 읽었더라도 당신의 독후감은 늘 이래야 합니다. 그것이 객기든, 만용이든, 오만이든, 오기든 다 좋습니다. 좋은 작품을 좋다고 인정하면서도 한 가닥 곤두서는 자신감. 그것이 당신의 영토이며, 당신이 차지할 수 있는 빈자리입니다. 수백, 수천 편의 좋은 작품을 읽었더라도 그 '빈자리'는 당신의 의식 속에 꼭 확보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섭섭하지만 작가 되기를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기죽고 가위눌려서 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124. 개성적인 인물을 많이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필연코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당신이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이 말을 '최초이자 최후의 경고'로 받아들이십시오.

'1인칭이 아니라 3인칭 소설을 써라.'

지금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99퍼센트는 1인칭 소설입니다. 그것은 벌써 20여 년 가까이 된 아주 잘못된 작풍이고, 무분별한 유행입니다. '나는, 나는'으로 시종일관하는 서술로는 인물의 개성, 인물의 독창성, 인물의 전형성이 창조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1인칭 소설은 열 편을 쓰나, 백 편을 쓰나 그 작가가 만든 인물은  '나' 하나일 뿐입니다.

128. 소설에서 작가의 인물 창조란 자연의 그 위대하고 탁월한 능력이 빚어낸 인간의 그 다양함의 차이를 발견해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수가 하도 많고 많아 그 차이란 아주 미세하고도 섬세합니다. 그러므로 그 차이를 '뚜렷하게' 찾아내려면 유심히, 뚫어지게, 꿰뚫어지게 보아야(관찰) 합니다.

129. '나는 파리 시내의 모든 사람이 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뚫어지게 관찰한다." - 플로베르

바로 이것입니다. 서울 시민은 1천 2백만 명을 헤아립니다. 그들은 모두 당신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건성으로, 무신경하게 지나치지 말고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꿰뚫어지게 살피십시오. 그리고 그들은 당신의 필요에 따라 분해하고, 나누고, 덜어내고, 결합하고, 덧붙이고, 수정해서 재구성해내십시오. 개성적인 인물은 그렇게 해서 탄생됩니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 이 말은 위대합니다. 불변이기 때문에. 플로베르나 저나 눈 부릅뜨고사람을 유심히 살피는 것은 자연의 마술적 창조력을 흉내 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개성적 인물, 전형적 인물은 생김의 다름만을 말하는 것이 물론 아닙니다. 성격/성품/지적 수준/직업/행동/어투/의식,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뒤섞여 한 인물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을 이루어 내기 위해 작가는 꾸준히 노력해야 하며, 줄기찬 노력이 이루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152. 아, 저는 남자의 만용이었다 치더라도, 김초혜는 어쩌자고 결혼을 결심했을까요. 조정래, 유산 한 푼 받을 것도 없는 가난뱅이 집안의 차남. 언제 작가라도 될 것인지 아무런 기약이 없는 사내. 수입이라고는 전무한 대한민국 육군 일등병일 뿐인 사내를 남편으로 맞이하고자 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아슬아슬 조마조마한 일일 뿐이고, 어쨌거나 김초혜는 시만 잘 쓰는 게 아니라 사람 보는 눈도 탁월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20여 년 후에 조정래가 어떻게 될지 꿰뚫어본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김초혜의 결혼 결정은 용기를 넘어 만용이었습니다. 그걸 신파조로 말하자면 '사랑의 힘'이라고 할밖에 없지요.

제가 지금까지 42년 동안 김초혜 한 여자를 해바라기하며 살아온 것은 그때 저를 선택해준 것에 대해 보은을 다하려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때 김초혜가 보잘것없는 저를 외면해버렸더라면 저는 깊게 상처받은 영혼을 떠안고 오늘과는 영 다른 방향에서 방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195. '그는 그 분노와 증오를 어떻게 다스리며 그렇게 참혹한 역사를 그렇게 냉정하게 그려낼 수 있었으며, 그렇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인가.'

며칠을 생각하다가 저는 마침내 답을 얻었습니다. 그는 그 분노와 증오를 이성화하고 논리화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감정 상태에 두었더라면 그런 글을 써낼 수 없었을 것이란 깨달음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

제 머릿속에서 정리된 논리였습니다. 그것은 작가가 지녀야 하는 가슴이고, 의식이었습니다.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가 없고서는 역사를 바르게 볼 수도, 진실을 캐낼 수도, 인간을 옹호할 수도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어야만 바르고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96. 우리는 아무런 판단력이나 분별력 없이 인디언을 멸시하고 적대시했듯이 흑인도 마냥 무시하면서 동시에 우월감을 가졌던 것입니다. 의식의 식민지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204. 작가에게 있어서 상상력이란 기본적인 능력이면서 절대적인 능력일 것입니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머리 좋은것으로는 되는 일이 아닙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암기를 우선으로 하는 일반 공부는 잘 할 수 있어도 예술을 할 수 없는 것은 상상력 부족 때문입니다. 상상력은 다른 말로 하면 창의력입니다. 사물을 남다르게 보고, 남다르게 생각하고, 남다르게 엮어내는 능력인 상상력은 작가의 장수를 보장하는 동시에 작품 세계도 다양하게 해줍니다.

215. 그로부터 26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여태껏 한 번도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걸 만약 묻는다면 그 얼마나 멋없는 일입니까. 우리 인생살이에서 알고도 모르는 척,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넘기는 그 헤아림과 짐작의 여백이 그 얼마나 깊고 포근하고 넉넉한 삶의 미학입니까. 그런 때의 김초혜는 저에게 또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되, 연꽃이거나 모란이거나 수국입니다. 왜 하필 이 세 가지 꽃이냐고요? 이 세상의 꽃 중에 곱고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을까마는 저는 이 세 가지 꽃을 가장 좋아합니다. 저의 남은 소원은 어디 바다도 보이고 산도 보이는 곳으로 가 연꽃과 모란과 숙ㄱ이 아담한 집을 에워싸고 흐드러지게 피도록 해놓고 하루에 몇장씩의 글을 느릿하게 써나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조금씩 길어지는 인생 황혼녘의 제 그림자를 보며 꿈꾸는 이 소원을 너무 호사스럽다고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꿈은 꿈이어서 아름답고 보호받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219. "그게 어지 가능한 일입니까. 수많은 주인공들에 따라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고, 이야기의 줄기가 수없이 갈라지고 또 갈라지는데요." 기자들의 질문은 계속됩니다. "그거……, 글을 쓰려고 마음먹을 때부터 정신은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자나 깨나 그 생각에만 몰두하게 되면 그게 별로 어렵지 않게 되어 갑니다."


감동은 모든 예술작품의 생명성이며, 예술성의 척도이며, 예술의 존재 이유입니다. 뭇 대중이 예술작품을 필요로 하는 것은 그 감동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며, 그 감동을 오래 간직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동의 크기와 예술성은 정비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우리의 시대는 자본주의 시대입니다.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목적에 기여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노동은 치열하다 못해 가혹하기까지 합니다. 말이 좋아 하루 8시간 노동이지 그 가혹성 때문에 모든 사람은 지쳤고, 다른 일에 무관심해졌습니다. 그런 그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마음이 울려 이끌리게 하고, 그 감정이 사무쳐 오래오래 남는 것, 그것이 감동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자를 통해 그 일을 해내기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저는 작정했습니다. 그들을 감동시키려면 그들의 두 배,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바쳐야 한다! 그래서 저는 20년 동안 글감옥에 갇혀 '먹고, 자고, 쓰고'(아내가 신문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한 말)가 연속되는 생활 속에서 정말 16시간의 노동을 다 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저와의 약속을 지켜 제자신을 이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글을 무난하게 잘 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글을 물 흐르듯이, 그러면서 의미가 깊도록 쓰고 싶으면 많은 책을, 정신 모아, 유심히 읽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앞에서 몇 번씩 강조했던 말입니다. 남의 눈길에 끌리게, 남의 마음에 담기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현실은 소설가의 상상을 능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실의 삶의 필연성과 처절성은 늘 소설가의 상상력보다 깊고 넓은 파장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현장 취재를 꼭 해야 합니다. 만주의 고생은 그 끝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353. 여러분, 정직하게 자기를 돌아보십시오. 한 가지의 문제, 한 작가의 작품을 놓고 정반대의 입장에서 평을 했는데 이 평론가의 말도 옳고, 저 평론가의 말도 옳게 느껴지는 경험을 안 해보셨습니까? 그런 일은 너무 흔합니다. 지적 수준이 낮을수록, 자기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을수록 그런 현상은 더 심해집니다. 궤변도 논리이고, 모든 논리는 그 나름의 설득력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궤변적 평론도 많고, 그건 엄청난 독입니다. 

평론은 독서의 보조물일 뿐입니다. 선입관이나 고정관념 없이 작품을 먼저 읽고 자기의 주관적 판단과 평가를 한 다음에 비로소 평론을 참작하십시오.

363. 제국주의 국가는 지금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강대국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제 제국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영토를 장악하는 방법은 번거롭고 반감을 사게 됩니다. 그 방법 아니고도 식민지를 거느렸던 때보다 더 큰 이익을 장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돈의 힘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토 제국주의에서 자본 제국주의로 모양을 바꾼 것뿐입니다. 

그들의 착취 대상인 약소국이라고 그 변신을 모를 리 있습니까. 현대 대중교육에 의해 약소국에도 총명한 지식인이 포진하게 되었으니까요. 그 지식인이 자본 제국주의의 교묘한 침탈에 대해서 방어하고 나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방어 무기가 바로 민족주의입니다. 약소국이 거대한 제국주의의 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예나 지금이나 민족주의뿐입니다.

365. 아까운 돈 들이고, 귀한 세월 바쳐가며 유학한 것은 그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태어난 나라, 당신의 모국과 당신의 모국을 형성한 그 사회를 위해 건전하게 쓰자고 공부한 것입니다. 그리고 너나없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경제의 흐름을 따라 세상이, 세계가 어떻게 변한다 해도 인종의 차이, 국가의 차이, 민족의 차이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세계화라는 말과 함께 인터넷이 일시에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각종 운동선수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교류하고, 우리나라 전자제품이 세계시장을 석권해나간다고 해서 그런 차이가 다 없어진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현상은 다만 돈의 흐름을 따라 일어나는 경제의 풍경일 뿐입니다.

372.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379. 대학생이 지식인의 책무를 바르게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목을 갖추는 일은 별로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그런 자세를 갖추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 사람은 벌써 그 절반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은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자각의 싹 위에 물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우선 책을 읽는 것입니다. 첫째, 지식인의 삶을 충실히 살다 간 분들의 전기나 평전을 골라 읽으십시오. 둘째,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인의 책과 글을 골라 읽으십시오. 셋째, 진정성을 가진 시민단체를 골라 틈틈이 자원봉사를 하며 실천 경험을 쌓고, 성취의 보람 속에서 안목을 더욱 넓혀 가십시오. 참된 지식인의 삶은 고달프나 그 의미와 보람은 하늘의 넓이입니다.

389. 선진국 국민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우리처럼 그렇게 잘사는 것에만 혈안이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두 개의 의식을 갖추고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는 정치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의식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와 경제는 국민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마차의 두 개 수레바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국민된 자는 자기들의 행불행을 싣고 가는 마차의 두 수레바퀴가 제대로 잘 굴러가는지 정치와 경제에 똑같이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한 가지에 치열하게 집중하고 몰두하는 생각(사고)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에 폭발하는 불꽃처럼 원하던(찾고자 했던) 바가 환하게 꽃피우는 것이 영감입니다.

 흔히들 영감이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그것은 영감이 떠오르는 그 순간만을 보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반드시 자기가 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깊고 깊은 고심과 몰두가 쌓여야만 영감은 분출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영감이란 고심의 깊이와 몰두의 강도에 따라 결정된다.'

419. 진실을 지키고, 진실을 찾아가는 삶이란 현실적으로는 언제나 힘겹고 고달프며 손해보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 우직스러움, 그 바보스러움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바꾸어왔습니다. 그 바보 같은 삶은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순결한 영혼과 진정한 양심을 가진 사람만이 그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글쓰기 계획을 세우는 것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먼 나라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먼 나라 여행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레임이듯이 새로 쓸 작품에 대한 설레임도 언제나 새롭습니다. 온갖 고난을 무릎쓰면서도 굳세게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이 탐험가의 생명력이듯이 새로운 작품을 향하여 새로운 설레임으로 펜을 드는 것, 그것이 작가의 생령력일 것입니다. "작가는 여든의 나이에도 소년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 괴테의 말입니다.

23.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비로소 뭔가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24.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나 인류학자의 관점을 벗어나서 나름대로 제 강의에 대해 정의를 내리자면, 우리가 잊고 지내 왔던 그 무엇을 찾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 무엇이란 바로 '독창성'입니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미지의 요소를 갖고 있는 독특한 개체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타인과 다른, 여러분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남들과는 좀더 다른 시각, 감정,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25. 교육의 본질이란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독창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그것을 계발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친절히 가르치는 일입니다. …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입니다. 더 유감스러운 일은, 우리 교육이 사람들을 모두 똑같게 만들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33. 여러분 모두 옆집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표정이군요. 하지만 이웃과 함께 생활하며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상대방에게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알게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어른이 되면 독립을 해야 하고, 어느 누구의 도움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들 모두 외로움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지고 자랑스런 일입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도와 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저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여러분 모두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41. 인간은 또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진정한 언어의 역할이란 인간을 해방시키는 데 있고, 우리들의 의사 소통을 거드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언어는 인간을 가두는 상자와 봉투가 되고 말았습니다. 벅민스터 풀러는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르쳐 준 말에 너무 젖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가족과 친구가 없는 시카고 빈민가로 가서 2년 동안 내 머릿속에 들어 있던 단어들을 모두 지우고 내게 알맞은 말을 찾았다. 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다른 사람의 언어가 아닌 나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42. 사람들은 흑인이라는 수식어 하나만 들어도 그 사람에 대해 이미 모든 걸 알게 됐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도 눈물이 있을까? 아프리카 흑인들에게도 감정이라는 게 있을까? 이해를 할까? 희망을 가지고 있을까? 자기 자식을 사랑할까?"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식어의 노예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언어의 주인이 되지 노예가 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알려준 단어의 뜻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직접 느끼고 난 뒤에야 그 단어의 정의를 내립니다.

47. "약한 사람은 잔인한 법이다. 강한 사람만이 너그러울 수 있다." 로스튼

54.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서 우리 모두 인간임을 즐깁시다. 당신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라고 고백합시다. 우리는 이따금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간이기에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우리 스스로 그것을 인정한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어려울까요?

56.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맨 먼저 자연스러움을 되찾아야 합니다. 다시금 서로를 어루만지고, 서로를 끌어안고, 서로 미소짓고, 서로를 생각하고, 서로를 아껴야 합니다.

58. 이 시대에 왜 초기 실존주의 같은 철학이 유행을 하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그 이유는, 엄청나게 높은 벽이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실체일까? 나는 존재할까?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는데. 아무도 내게 손을 내밀지 않는데.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봤자 내 말을 듣지 못하는데. 이젠 아무도 내 눈을 들여다 봐주지 안흔ㄴ데. 외로워, 외로워서 줄을 것만 같다…… 

슈바이처는 이렇게 말합니다. ' 주위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우리는 외로움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61. "돌멩이는 뭇일까요? 샐리, 이 돌멩이는 어디서 났을까? 누가 이 돌멩이를 만들었을까?"

그날 수업은 모두 잊어보리고 그 돌멩이에 대해서 온갖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는 걸까요? 모든 사물 안에 온갖 진실이 숨어 있는 법인데 말입니다. 

인위적으로 상홍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진실은 바깥 세상이 아니라 우리들 곁에 있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 말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지식은 나무 한 그루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지식은 인간 한 사람 속에 들어 있습니다.

64. '새장에 갇힌 새는 울지 않는다.' - 소로.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를 배우려면 자유로워야 합니다. 자유롭게 시험하고 시도하고, 자유롭게 실수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73. 교육이란 사람들을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입니다. 테이블을 예쁘게 꾸미고 산해진미를 차려 놓을 수는 있지만, 사람들에게 그 음식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습니다. 칼 로저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을 가르친 사람은 없다.' 

사실입니다. 나는 나를 가르칠 따름입니다. 자기가 모든 해답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교사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구제받을 길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 아이가 기발한 질문을 했을 때 "와! 선생님도 그건 답을 모르겠는 걸? 우리 같이 한번 생각해 볼까?" 하고 말하는 교사라면 얼마나 멋집니까?

80. 하나의 길은 백만 갈래의 길 중에 하나일 뿐이다. 때문에 내가 택한 길은 그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길을 따라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잠시도 머무르면 안 된다. 내가 택한 길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도중에 방향을 바꿨다고 해서 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나무라면 안 된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한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 길을 고집하건 포기하건, 두려움이나 야망에서 비롯된 판단이어서는 안 된다. 경고하건대, 모든 길을 자세히,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길을 걸어 봐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이 길에는 생명이 있는가. 어떤 길이건 마찬가지이다. 뚜렷한 목적지가 있는 길은 없다. 덤불 숲을 가로지르느냐, 덤불 숲으로 이어지느냐, 덤불 숲 밑으로 지나가느냐가 다를 뿐이다. 그 길에 생명이 있느냐가 유일한 관건이다. 그런 길이라면 좋은 길이다. 그렇지 않은 길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