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희망제작소로 왕래하던 시절.
매일 한강을 지났다. 
살면서 한강을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
삶의 유한성을 물었다.
어제의 한강은 어제의 시간이었고
지금 이순간만이 내게 주어진 시간이었다.
홍성으로 귀촌한 후 오늘
오랜만에 한강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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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는 희망제작소에 있었고
오늘의 나는 마을활력소에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제작소에서 활력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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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순간'을 적는다는 말은 내게
지금의 나를 기억하고
걸어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리하고 싶다는 말이다.
무의미를 걷어내고 싶다는 말이다.
.
책상에 앉아 펜을 들 때면, 
그럴때면 가슴이 벅차온다. 
서늘해지는 몸, 가빠지는 숨, 떨려오는 팔.
만물에는 영혼이 있고
영혼은 불을 품고 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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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쁨, 내일을 향한 꿈.
슬픔과 비루함, 실망과 결심.
다져지고 다져져 다짐이라 하는가
그 마음을 불꽃이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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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강이다




당신은 참으로 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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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모든 시작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당신에게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당신의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채로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고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 문제들 자체를 낯선 말로 적힌 책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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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 당신도 모르게 당신의 해답 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을 향해 매진하십시오. 그 길을 가다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신뢰로 맞아들이도록 하세요. 그것들이 당신의 의지에서 나올 때, 당신 내면의 욕구에서 나올 때 두려워 말고 받아들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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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에티오피아 활화산


여행을 다닐 당시, 
'사랑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했었다.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프로젝트였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 그는 자신의 인생을 
전기와 후기로 나눈 이탈리아 여행기에 이렇게 적었다.
“길 위에서 나는 내 작품에 쓰인 인물들을 만났다.” 
사람은 결국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보는가보다.
길 위에서 나는 내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을 보았다.
사랑해 프로젝트는 그래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이건 지금까지 숨겨왔던 마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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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여행은 피할 수 없는 게 슬럼프라 생각되지만
유럽 여행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재미가 없었다.
유럽 건축물은 내게 깊은 감흥을 주지 못했다.
유럽은 화려하기만 할 뿐, 무언가 느끼기 힘든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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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 먼 친척이 있어
염치도없이 무작정 찾아갔더랬다.
사촌 형의 아내되시는 분,
그 동생되시는 분이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었다. 
그 주인공 지선이 누나와는 일면식도 없었다. 
하지만 누나는 기꺼이 손님 방을 내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일주일을 지냈다.
누나의 남편 폴 형.
네덜란드인 폴 형은 정말 컸다.
우리는 하이파이브로 인사를 했는데
187cm와 168cm의 체감되는 하이파이브 높이는
현저하게 달랐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인사였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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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지선이 누나는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국을 퍼주며 누나는 내게 미역국은
익숙치 않아서 잘못 끓였다고 했다.
한국을 나온 후 처음으로 맛본 미역국이었는데,
정말 못 끓인 미역국이었다.
하지만 정말 맛있었다.
가끔 그 미역국이 생각났는데
이번에 홍성에 놀러온 친구들을 위해 미역국을 준비했던건
어쩌면 누나의 영향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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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만남은 한 사발의 국밥과 같은게 아닐까 싶다.
우린 한 사발의 국밥으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고
어제와 다른 오늘의 우리로 변화되어간다.
유럽에서 느끼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그것.
그게 무어라고 아직 정의할 순 없지만
그건 지선이 누나와 폴형의 집에 있었다.
익숙치 않은 미역국과 같은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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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끓여주었던 미역국이 생각나는 오늘.
두 사람은 지금 미국에 있고,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가족이 태어났다.
형과 누나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묵혀왔던 고마운 마음을 이제 전한다.
고마워요 누나, 형.

마음으로 미역국을 보낸다.


# 내가 믿는 세상(프롤로그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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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말, 희망제작소와 한겨레에서
<2045년 대한민국 소셜픽션 컨퍼런스>를 연다.
사이언스픽션처럼, 미래 사회를 상상해보는 장이라고 한다.
지난 1달 정도, 30년 후를 상상해보았다.
내가 참가하고자 하는 분야는 복지다.
복지를 통해 불안 없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사전은 복지를 '행복한 삶'이라 한다.
행복한 삶이 결국 삶의 목적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복지는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복지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가 주체가 되는 마을 복지다.
내일 일도 모르는데 무슨 30년이람,
귀촌한지 이제 겨우 5달인 내가 무슨 말을!
물론 생각은 불완전하고 맹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오늘의 나임을
숨기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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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5년의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에게 매월 40만원(2015년 기준)의 기본수당을 지급한다
지산지소(地産地消), 즉, 생산과 소비가 지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급할 만큼의 농사를 짓는다.
에너지, 교육, 문화, 교통, 식량 등이 마을 안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된다.
가난의 문화, 사람들은 소비나 소유가 아닌 존재가 풍성해지는 삶의 방식을 지향한다.
사람이 태어나 자라는 곳도, 살아가고 일하는 곳도, 죽는 곳도 마을이다.
삶이 뿌리내리는 마을이다.
불안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순환하는 마을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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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모든 이야기의 시작, 기본소득
2. 농촌으로 돌아온 사람들
3. 마차가 부활했다. 순환하는 마을
4. 마을발전소. 적정기술을 통한 공업화
5. 사람이 뿌리를 내리는 마을.
6. 우리 문제는 우리 힘으로, 주민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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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오래 전부터 홍동에서 마을을 이루며 살고 계신 분들로부터.
마을에서 농부를 길러내고 계신 선생님,
마을 은행장, 환경운동가, 마을 의사, 귀농 청년.
써놓고 보니 내 생각이라기 보단
선생님들의 꿈을 정리해 놓았을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뭐 이런게, 세대를 이으며 이어지는 꿈일 수 있겠다.
<2045년 컨퍼런스>에 참여한다는 핑계로
막연히 상상해왔던 생각을 글로 정리할 기회가 되었다.
생겨먹길 이상을 쫓기 좋아하도록 만들어진 내게
30년 후를 상상하는 일은 설레는 일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 즐거웠다.
무슨 생각으로 귀촌을 한 것인지.
무슨 활동을 할 것인지.
이 글이 나의 다짐이다.
내가 믿는 세상이다.
글의 제목은 E.F.슈마허의 책 제목을 빌린다.
(그가 나를 변화시켰으니, 책 제목쯤 인용해도 불만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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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패인의 작은 도시 마리날레다, 이 도시의 시장인 산체스 고르디요.
30년 전인 1985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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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토피아를 정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반동 세력에 맞서 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에 유토피아를 세워야 합니다. 벽돌을 쌓듯이 차곡차곡, 끈기 있게, 꾸준히, 우리가 오랜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사람에게 빵이 있고, 시민들 사이에 자유가 있고 문화가 있을 때까지, ‘평화’라는 말을 존경심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현재에 세워지지 않는 미래는 없다고 믿습니다.
진심으로."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 중

충남 홍성




홍성 대보름 달집

3월 5일 목요일 저녁, 
마을에 대보름 행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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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 70여분이 모였다. 
아이들은 연을 날렸고, 삼삼오오 준비해온 음식을 함께 나눠먹었다. 
소원지에 올해의 소원을 쓰고 달집에 매달았다. 
사람들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아이들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0.1초 깊은 고민에 끝에 나는 '연애'를 적었다.

해가 지고 보름달이 떴다. 달집에 불이 붙었다. 용이 승천하듯 불이 타올랐다. 달집을 태우는 것은 마을의 태평과 풍년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언제나 그래왔듯 불에겐 남녀노소를 매혹하는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한동안 말을 잃고 불을 바라봤다. 
어른들은 추억을 기억하며 아이들은 기억을 만들며 쥐불놀이를 했다. 대보름은 새해 첫 보름날이자 농사의 시작일을 의미하는 날이다. 봄을 기다려온 씨앗들이 깨어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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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여러 단체가 힘을 모으고 재능을 나누어 보름달만큼 풍성한 대보름이었다. 
지금 이순간 모두의 행운을 빈다.

홍성 대보름 얼뚝 달집얼뚝 형님들이 뚝딱뚝딱 만든 달집


꽃보다 홍성 (5)
ㅡ 저기 잠깐만요

어젯밤 홍성에 강의가 있었다. 돈이란 무엇인가. '지역화폐' 준비를 위한 강의였다. 어제는 8번째 강의 였다. 서울 해방촌에서 지역화폐를 운영하는 빈마을금고, 공동체은행 ‘빈고’가 강의를 위해 홍성까지 내려왔다. 그들의 비전과 생생한 경험을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강의가 끝났고 뒷풀이가 마련됐다.

눈이 내리는 밤이었다. 중간중간 한두 사람이 떠났지만 새벽 3시까지 이어진 자리. 겨울밤이 깊어갔다. 농촌에는 야간 택시가 없다. 잠을 자야할 시간에는 운전자도 손님도 잠드는 농촌의 밤, 자연의 규칙을 따르는 농촌의 밤. 인간적인 밤이었다. 차 있는 사람이 차 없는 사람의 귀가를 도왔다.

1시쯤, 어느 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동이형이 데려다주기 위해 같이 일어섰다. 형동이형은 새신랑이다. 인천 사람인데 귀촌한지 4개월이 되었다. 아직은 직장을 다니지만 농사를 꿈꾸고 있다. 덩치만큼 마음도 큰 형이다. 20분 후, 형에게 전화가 왔다.
“동호야, 차가 빠졌어.” 나를 포함한 건실한 남자 5명이 출동했다. 모닝을 타고 출동했으니 <모닝 특공대>라 칭한다. 

홍성에는 지난 사흘 동안 눈이 내렸다. 실핏줄 같은 농촌 길. 다행히 해가 있는 낮에 눈이 다 녹았다. 간혹 그늘이 지는 곳은 눈이 녹지 못했다. 형동이형 차는 그곳에 차가 빠져있었다.

함께 밀어봅시다. 어둠 속에서 어느 분이 제안을 했다. 하나 둘 셋. ‘으다다다다다-‘ 독수리 5형제는 왜 5명인가. 협동조합을 세우는데는 왜 5명이 필요한가. 손가락은 왜 5개인가. 오늘 그답을 깨달았다. 차가 빠져나왔다. 너무나 쉽게. 모닝 특공대는 살짝 허망한 마음마저 느꼈다.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눈덮인 야경도 보고 좋네요.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분위기. 하지만 차는 바로 다시 빠졌다. 그래도 사람들 있는 곳에서 빠져서 다행이다. 다시 미시죠. 아까 그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하나 둘 셋. ‘웨엥-‘ 헛도는 바퀴. 이번 빠짐은 좀 진지한 걸.

하나 둘 셋! 웨엥-
하나 둘 셋~ 웨엥ㅡ

고무 타는 냄새가 난다. 영하 10도를 넘었지만 타이어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나는야 명색이 항공기 정비사 출신. 지금 이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잠깐 한박자 쉬었다 하시죠. 타이어가 과열되었어요. 터질 수가 있습니다.”
잠깐 쉴겸 작전타임. 상황을 살폈다. 눈을 치워냈고 흙을 메웠다.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다시 힘을 합쳐 보시죠. 하나 둘 셋! 와다다다다다다. 차가 조금씩 움직였다. 그 순간. 엔진소리가 새벽의 고요를 가르던 그 순간. 나는 보았다. 삽질은 군인만 하는 게 아니었다. 자동차도 땅을 팠다. 그것도 매우 잘 팠다. 그건 마치 우리 할머니네 똥개 백구가 똥을 싸고 땅을 파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동차도 흙을 뒤로 파날렸다. 퍼더더더덕. 퍼날라가는 진흙.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타이어 뒤에 섰는가. 어둠속에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하나 둘 ..."
… 저기 잠깐만요.
퍼더더더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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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화폐는 소규모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화폐이다.

어렸을 때 용돈은 저금해야 한다고 들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이렇게 배웠다. 은행에 저축된 돈으로 기업은 대출을 받는다. 그 돈으로 투자를 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월급을 받으면 은행에 저축하거나 펀드에 투자했다. 오늘날 경제 시스템은 내가 듣던 이야기와는 달라졌다. 은행에 있는 돈, 대부분을 재벌기업이 빌린다. 재벌은 대출받은 돈을 사회투자가 아닌 자기들 잇속 챙기기 위해 쓴다. 그것들은 대부분 비윤리적인 일이다. 자신들을 위한 편법을 만드는 로비자금에 돈을 쓴다. 쌍용차 부당해고가 정당했다고 말한 대법원. 슬프다. 원전을 세우는 돈도 무기를 만드는 돈도 내가 저금한 돈에서 시작되고 있다. 팔지 못하는 깡통 집을 가진 부모님 세대. 평생을 벌어도 사지 못할 집값. 그 부동산 거품을 물려받는 우리. 내가 투자라고 생각했던 행동은 사실 투기였다. 나도 모르게 사회 문제를 만들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피를 돈이라고 했을 때, 지금 우리 사회의 혈액순환에는 문제가 있다. 지역화폐는 돈이 어느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는 힘을 지녔다. 이웃과 이웃 사이에서, 지역 공동체 안에서 순환되는 돈이다.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힘을 가진 돈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돈이다.

홍성차가 눈길에 빠졌다.


충남 홍성흔적



"필요없는 물건 좀 버립시다"

내가 엄마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 엄마는 '언제 쓸지 몰라’주의자다. 어느날 작정을 했다. 필요없는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기로.

때 지난 신문, 잡지, 서류부터 시작해 마구마구 분리수거 박스에 쓸어담았다. 그러다 발견한 연필깎이. 증기기관차 모양의 연필깎이. 가차없이 박스에 담았다. 이제 연필 깎을 일 없으니까. 구사일생이랄까. 이 친구 버려지기 전에 아빠에게 발견되었다. 그리고 알게 된 이 친구의 역사. 20여년 전 아빠는 1년 간 일본에 파견을 가셨다. (그렇다, 난 외국인 노동자의 아들이었다) 이 연필깎이는 아빠가 파견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사오신 연필깎이였다.

- 홍성살이 1달. 집도 절도 없이 시작했다. 집을 구했고 살림을 채워나가고 있다. 간디 형아의 물레 라이프까진 못하겠지만 소박함을 지향하며 살고싶다. 하지만 새로 얻은 집은 냉장고, 세탁기가 있는 풀옵션방이 아닌 그저 텅빈 집. 채워야 할 게 무수했다. 한국 전쟁 직후 한국을 방문했던 외신기자들의 느낌이랄까.
"아무것도 없었다.”

- 요즘 어딜가든 쓰레기장을 눈여겨 본다. 의자, 거울, 옷걸이... 보물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혼 시절, 어려웠지만 살림 채워가는 재미가 있었지. 라고 어르신들이 하는 말씀을 이제 조금 이해하겠다.

- 자발적 살림. 자발적 노동.
집을 구하고 생활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주말 아침은 자연스럽게 살림의 시간이 되었다. 걸레질, 손빨래, 집수리.. 숨쉬고 살아있는 이상 살림은 끝이 없다. 그런데 만약 부모님 집에서 했더라면 입이 삐죽나왔을 일이다.

- 원룸을 구했더라면 어땠을까.
군인 시절 군숙소에서 살았다. 원룸이었다. 7년을 살았다.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저 잠을 자는 숙소였다. 시설에 대한 무책임, 무관심은 이 주변인 느낌으로부터 온게 아니었을까.

자본주의의 문제점 한가지는 돈이 되는 행위만을 일이라고 규정하는데 있다. 덕분에 우리 세대가 상상 할 수 있는 일의 폭은 줄어들었다. 우리가 직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에는 이것도 포함되지 않을까. 진로의 선택 앞에서 자본주의는 이렇게 묻는다.
"그걸로 먹고 살수 있겠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일. 살아있기에 생기는 일 = 살림. 요즘 '일'의 소중함을 배우고 있다.

- 기차 연필깎이는 다시 서재에.
무엇이든 마음이 담길 때, 비로소 존재를 갖는 게 아닐까. 1년만에 보는 아들. 그 공백의 미안함을 말하기 위해 샀던 연필깎이. 내겐 이제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지만 이 연필깎이는 아빠에게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유래없는 풍요와 소비의 시대. 그럼에도 여전한 곤궁함과 갈증. 그건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지 않을까. 다른 대상에게 마음을 담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박용재 시인의 시를 덧붙인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채우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삼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충남 홍성 귀촌 피어나다,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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