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에게 도깨비를 보여줬다.
단비는 도깨비에게 뺨다구를 먹여주었다.

도깨비는 그저 같이 놀고 싶었을뿐...

<가을이 한창이던 10월 17일, 영덕> 
ㅡ답은 정해져 있는 글임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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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이란 이름이 대(되)게 낯선 곳은 아니나 실제로 가보긴 처음. 영덕이 경상도라는 걸 안것도 처음. 이게 라임이라는걸 알아채는 것도 당신이 처음(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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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은 지금 뜨겁다. 지난 7월, 정부가 영덕에 신규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조용하던 소도시가 출렁였다. 이는 콘크리트 같은 지지율을 보인 여당에 당수를 맞은 겪인데, 지난 30여년 방사능폐기장 건설을 3번 막은 영덕군민들이 원자력발전소를 모를리 없기로서이다. 무튼 이 결정과정이 영덕군민의 뺨다구를 때렸다 느껴지는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주민들의 의견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다. 전적으로 핵산업 이해관계자들의 결정이었다. 뿔난 시민들. 시민들은 스스로 답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원자력발전소를 자손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뭐, 기대도 안했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당연하게도 시민들에게 선거인 명부를 내주지 않았다(왜 월급을 받는거냐 너희는). 주민 과반수 이상의 선거인 명부를 만들어야 한다. 이 일을 영덕 스스로 하기에 주민들은 고령화되었고 시민사회 역량도 미비했다. 영덕을 돕기 위해 전국에서 탈핵버스가 모였다. 각지에서 모여든 봉사자에 힘입어 영덕군민 4만 명 가운데 1만 5천여명의 주민 투표 실시 동의를 받았다. 그리고 10월 17일, 나는 세번째 탈핵버스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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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서 영덕으로 가는 길. 대전을 거쳐 대구로, 포항으로 내려와 조금 북쪽으로. '영덕 대(되)게 머네'라는 생각도 멀게 느껴지는 길. ’바다다!’ 누군가 말했다. 동해바다. 오랜만에 바다를 봤기 때문일까. ‘바다’라는 단어에서 오는 괜한 설렘 때문일까. 그냥 차를 5시간 타서 멀미가 난걸까. 영덕의 바다는 맑았다. 괜히 해가 동쪽에서 뜨는게 아니구나. 한적한 바닷가 마을, 태양과 바람을 맞으며 서있는 낮은 집들, 오징어 말리는 풍경, 볕을 즐기는 갈매기, 바다의 짠내, 부서지는 파도, 영덕이었다. 어째서 이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발전소가 세워져야 할까. 전기는 더 생산할 필요가 없다는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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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뒤로하고 도착한 영덕군청. 군청 앞 농성장에는 전국에서 온 연대자들이 모여 있었다. 영덕핵발전소 찬반주민투표 추진위원회의 인사, 그리고 활동에 대한 간단한 설명. 우리가 받는 '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동의 서명부'가 곧 투표인 명부가 된다고. 간단한 설명이 끝난 후 각자의 구역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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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내일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의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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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실례합니다. 토요일 오후 젊은 사람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집집이 찾아가 대문을 두드리면 대부분 노인 분들이 나왔다. 주민 투표에 대한 설명을 해나간다. 앞서 몇 차례 서명팀이 지나간 지역이었나 보다. 이미 서명을 하신 분들이 계셨다. 대략의 분위기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반대였다. 주민투표를 설명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핵발전소를 왜 짓지 말아야하는지 말하는 할머니, 멀리서 와준 우리에게 고맙다 말하는 할아버지도 계셨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도 계셨다. “난 잘 모르니 자식한테 물어볼게”라던지, “내가 사리분별이 어려워서 잘 모르겠어. 미안해” 주민투표 명부를 만드는 것도 일이지만 막상 투표일에 이분들이 투표까지 이어지는 것도 문제였다. 내일을 살아갈 청소년들의 의견은 왜 반영되지 못할까. 시민들의 실제 의사와 동떨어진 정책, 직접 관련있음에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지지 않는 현실. 활동이 몸에 익어갈 때쯤, 모이기로 한 시간이 되었다. 문도 못두드려보고 지나쳐야 하는 한집 한집이 아쉬운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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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에는 현수막을 달았다. 발전소 건설 예정 부지도 다닌덕인지, 발전소 건설에 찬성하는 듯한 주민을 더러 만날 수 있었다. 11월 11일 주민투표 날짜를 알리는 현수막 게시도 못하게 했다. 그래, 그럴수도 있겠다. 이 나라의 삶이란게 대부분의 재산이랄 수 있는 부동산을 통째로 사준다는데, 눈앞의 현금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당장의 먹고삶을 위해 내 자식세대의 미래를 파먹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원자력발전소의 진실ㅡ발전소에서 방사능은 일상적으로 나오고, 방사능에 안전기준치란 없다는 점. 핵발전소가 세워진 땅은 수백만 년 죽은 땅이 된다는 것ㅡ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보면 원자력 발전소는 에너지 정의의 문제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핵발전소 문제는 현안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공동체 파괴의 문제이고, 민주주의 붕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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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의 대안은 있는가. 비판만 하지말고 대안을 제시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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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둘러보면 이미 세계는 방향을 전환했다. 순환되는 사회로. 재생에너지를 통해 에너지 자립을 이뤄가고 있는 여러 이야기를 읽으면, 자립의 방법에 여러 방식이 있다. 나무를 이용한 열에너지, 태양과 바람을 이용한 전기에너지, 바이오 재료를 이용한 가스에너지의 자립 등. 에너지 자급 방법은 지역 특성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뉜다. 핵심은 지방분권형 에너지 생산에 있다. 중앙집중 방식은 지금처럼 자원이 순환하지 못할 수 밖에 없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분리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어딘가는 식민지가 되어야 한다는 걸 뜻한다. 식민화는 또다시 지역 젊은이들을 도시로 빨아들인다. 지역 공동체의 파괴, 이는 다시 민주주의를 마저 붕괴하는 고리가 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서부터 끊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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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영덕에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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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울리는건 간절한 기도겠지만 하늘이 돕는건 진실한 행동이다. 우리 앞에 왜 영덕인가. 우리 앞에 놓인건 무엇인가. 소리없이 묻혀질,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는 또 하나의 사건인가, 전환의 분기점인가. 그 답은 11월 11~12일 민주주의 현장에 있다. 악순환을 끊을 고리, 지금 영덕에 있다. 영덕 주민들의 멋진 승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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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는 이런 편지를 썼다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무엇일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팍스러운 사람, 불쾌한 사람일거야.
사회적 지위도 없고, 그것을 갖지도 못할, 
요컨대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그것이 정말 사실이라고 해도 언젠가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괴팍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가슴에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겠어."

나의 빈센트 영제야
넌 오늘도 너의 길을 달리고 있겠지.
생일은 내일이지만 미리 생일 축하한다.
함께여서 고마웠다. 
다시 만났을 땐 우린 또 다른 사람들이 돼있겄지.
우리 서로의 길위에서 
가슴 속엔 각자의 불을 품고 다시 만나자.
그날까지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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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읽은 책을 훑어는 볼지라도 
다시 정독은 안한다. 
이 책을 읽기 위해
홍성으로 내려온게 아닐까 싶으니까.
두번째는 정리하며 읽겠슘.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찰스 아이젠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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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분리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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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각 분야에 닥친 위기들은 모두 '분리'라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것이다. 분리는 인간과 자연의 분리, 공동체의 와해, 물질적 영역과 정신적 영역으로 나뉜 현실 등, 다양한 모습으로 문명의 모든 면에 뿌리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듯)분리는 지속불가능한 것이다. 분리는 위기를 점점 더 늘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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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기계들이 가동을 멈추고 있다. 공장은 문을 닫고 건설장비는 방치되고, 공원과 도서관은 폐쇄되고, 빈 집이 남아돌고 식품은 창고에서 썩어가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굶주린 채 떠돌고 있다. 하지만 집을 짓고 식품을 유통하고 공장을 가동하는 데 들어가는 모든 인적/물적 자원은 전과 똑같이 존재한다. 무언가 실체 없는 것, 필요와 공급을 이어주는, 세상을 움직이는 기가 사라져간다.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돈이다. 오직 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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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텍스트들이 통상적으로 설명하듯, 돈의 기원은 물물교환의 수단이 아니다. 초기 화폐는 개오지 조개, 예쁜 구슬, 목걸이 같은 쓸모없는 물건들이었다. 그런 물건과 실용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교환한다는 것은 선물을 촉진하는 한 방식일 뿐이었다. 그것은 단지 의무감을 물질적 형태로 표현한 것, 즉 감사의 표시였다. '나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고 감사하는 마음을 받았다'는 표시였다. 본래 선물과 필요를 잇는 수단이자 신성한 선물경제에서 파생된 결과였던 돈이, 지금은 선물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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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다시 신성한 것으로 만들려면 그야말로 대대적인 돈의 혁명, 돈의 본질적인 변혁이 필요하다. 돈에 대한 우리의 태도만 바꾸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화된 태도를 구현하고 강화하는 새로운 종류의 돈을 창조하자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돈과 그에 따르는 새로운 경제를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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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이란 무엇인가? 
신성에는 고유성과 관계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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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신성을 잃은 세계에 살고 있다. 그래서 신성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량생산, 규격화된 상품, 비슷비슷하게 지은 집, 똑같이 포장된 음식, 각종 기관 직원들과의 익명적 관계, 이 모두가 고유성을 부정한다. 먼 곳에서 생산된 물건, 익명적 관계, 생산 및 처분 과정을 알 수 없는 상품, 이 모두가 관계성을 부정한다. 이렇듯 우리는 신성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고유성과 관계성을 부정하는 모든 것들 중에 으뜸은 물론 돈이다. 화폐는 표준화라는 목적에서 생겨났기에 말이다.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교환수단으로서의 돈은 그 기원과 분리되어 물질과의 연관성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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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화된 삶은 신성모독적인 삶이다. 돈과 돈으로 사는 것에는 신성이라는 속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웃이 정원에서 길러 갖다준 토마토와 슈퍼마켓에서 산 토마토는 어떻게 다른가? 나와 내 삶을 이해하는 사람이 참여해 지은 집과 조립식 주택은 어떻게 다른가? 근본적인 차이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고유성을 포함하는 특유의 관계에 있다. 그처럼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것들, 우리가 아는 사람과 장소의 이야기가 얽혀 있는 것들로 가득 찬 삶은 풍요로운 삶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인간미 없이 천편일률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맞춤형 상품이라 해도, 대량생산되는 경우는 똑같은 규격의 블록들을 가지고 배열만 약간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획일성은 영혼을 죽이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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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사물은 그 기원의 흔적을 지녔고, 존재의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 고유한 위치를 지녔으며, 나머지 존재들에 의존해 존재한다. 한편 표준화된 사물/상품은 획일적이며 따라서 모든 관계로부터 고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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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결핍이라는 환상...계속

이건 그냥]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이야기

여행기를 쓰다가 맞춤법/문법 검사를 할 때면,
저희 '영제'는 자꾸 오류로 나옵니다.
그리고 검사기께서 제시해주는 대치어들...

영제는 제게 정말 둘도 없이 소중한 친구지만,
가끔 '여제'님과 여행을 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feat. 검사기 사이트
 

중세 프랑스의 마을

왠지 꿈에서 본 듯한 이곳
설마, 저는 전생에… ?

21세기 바벨탑, 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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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바벨탑 이야기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다. 신이 되고자 탑을 쌓았던 인간의 오만에 대한 이야기이다. 최근 농촌진흥청에서 GMO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인도의 물리학자 반다나 시바는 유전자 조작 식품(GMO)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테리아 유전자를 씨앗에 넣어놓고 생명체를 '만든 것'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것은 생명체를 '오염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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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유전자 조작 식품은 소리 소문 없이, 꼭 필요한 안전 실험을 거치지 않은 채, 적절한 표시도 없이, 슈퍼마켓과 식탁으로 흘러들었다. 한국인은 평균 매일 밥 한공기 분량의 GMO를 먹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전자 조작 식품은 소비자에게 어떠한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더 먹음직스럽지도 않고, 맛이 더 좋은 것도 아니며, 가격이 더 저렴하지도 않다. 영양이 더 풍부한 것도 아니다. 이 식품을 인류가 태초부터 먹어왔던 자연 식품과 구분하기 위해 사람들은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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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식품이 있는데도 유전자조작식품을 먹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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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GMO를 먹기 시작한 시점은 1996년으로 추정된다. 생명공학농업이라는 몇몇 기업들의 예측할 수도 없고 위험하기까지 한 과학을 현실에 적용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식품을 매일같이 먹고 또 우리 아이들에게도 먹이고 있다. 우리나라가 GMO 수입 1,2위를 다투는 이유는 간단하다. 식량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로서는 농산물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입하는 대상국이 GMO를 만드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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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나 정부와 거리를 두고 있는 객관적인 과학자들의 GMO의 안전성을 따지는 실험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그 내용은 막대한 선전 광고, 언론, 소송 등으로 묻히고 있다. 결정적으로 유전자 조작 식품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표시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정보는 일반 시민이 겉으로는 알 수 없게 감춰져 있다. 소비자가 자신이 먹고 있는 식품이 GMO로 만든 것인지 아닌지 여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표시다. 한국도 GMO 표시제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GMO로 만든 대부분의 식품에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 면제조항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식용 GMO의 대부분은 가공식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면제조항이 여기에 적용된다. 이들 가공식품에서 외래 유전자나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으면 표시가 면제된다. 콩기름과 감미료가 그 대상이다. 원료 함량 5순위 내에 GMO가 포함되지 않은 식품 역시 표시가 면제된다. 그래서 빵, 과자, 음료수 등 전분 함유 식품, 그리고 두유, 이유식, 소시지 등 콩 단백질 함유 식품에 GMO 표시가 없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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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를 먹기 시작한지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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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발표되는 유전자 조작 식품의 안전성 실험 결과를 접하다 보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구의 전체 생태계, 모든 생명체의 건강과 유전자 조직이 연관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실험에서 실험용 쥐가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처음으로 실시된 객관적인 테스트의 결과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후로도 과학자들은 거의 매주 경고의 내용을 담은 글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년 또는 몇 십 년이 지난 후에야 나타나게 될, 진행이 매우 더딘 문제점들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GMO영향의 장기 누적 효과를 따져보기 위해서 한 세대(30년) 이상 지나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인간이 감수할 만한 위험이라고 판단한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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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가 갖고 있는 특징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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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품은 자연 상태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방법으로 유전자가 섞인 식품이라는 점이다. 농작물을 자연적으로 교배시키는 등으로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것을 '육종'이라고 한다. 방울토마토, 슈퍼옥수수, 씨 없는 수박, 통일벼 등이 이에 속한다. GMO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작물을 개량한다는 측면에서 GMO 또한 전통적인 육종기술의 일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같은 종이나 아주 가까운 종만을 대상으로 가능한 육종과 달리 GMO는 자연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세균, 바이러스, 다른 식물이나 동물에서 추출한 유전자가 이종간에 섞인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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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오랜 시간을 거쳐 안정화되 유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유전자가 다른 생명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다. 유전자가 인체나 생태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대단히 복잡하며 여전히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유전자 조작의 결과는 전적으로 불확실하다. 유전자 재조합의 결과가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심지어 다른 생명체에 섞여 들어가지 않을지, 설명할 길이 없다. 이 새로운 기술이 위험한 이유는 그 불확실성이 너무나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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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가져올 현상은 분명하다. GMO를 개발하는 다국적 농업자본은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얻는 반면,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생태적/건강상의 위험성은 고스란히 사회 전체, 더 나아가서는 지구 전체가 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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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기이한 특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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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품이 누군가의 독점적인 소유물이라는 점이다. 쌀 한 포대나 감자 한 자루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물의 변종(같은 종류의 생물 가운데 변이가 생겨서 성질과 형태가 달라진 종류) 전체가 한 기업의 상품이라는 뜻이다. 어떤 경우에는 종 전체가 누군가의 소유물이 된다. 우리는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그러한 식품의 어느 종을 기업이 차지한다고 상상해보자. 독점이라는 용어에 새로운 권력이 더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 문제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그 심각성을 비교적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인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들은 GMO 문제에서 생명특허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GMO 경작지가 넓어질수록 다국적 농업자본의 먹거리 사슬 독점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그 속에서 농민들의 경제적 종속상태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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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생명을 '오염시키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괜찮은지, 오염된 생물을 먹는 것인 과연 안전한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유전자 조작 종자를 개발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GMO는 식품 공급구조와 농업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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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순환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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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를 통해 외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외부의 힘에 의해 사회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는 사회는 절대로 지속 가능한 사회가 아닐 것이다. 지속 가능한 사회,  사람과 자연을 함께 살리는 농업은 결국 그동안의 지배적인 추세, 즉 외부 투입요소 비율의 상승과 이로 인한 농업과 농민의 종속화 경향에 반대하며, 지역 외부 투입요소의 비율을 낮추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역 안에서의 생태적 물질순환을 통해 투입요소를 조달하는 ‘지역농업’이 중요한 이유다. 즉 유기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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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글
<"먹지마세요" GMO> 마틴틸트, 킴벌리윌슨
<위험한 미래>권영근 편
[GMO OMG 우린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김훈기
[GMO 진실 혹은 거짓]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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