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상이 말하는 '좋은 삶'이
'생명'과 반대에 있다면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가난이 물질적 빈곤이 아닌 
삶의 충만을 의미하는 사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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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해석학>

극심한 고통은 참을 수 있지만, 의미 없는 고통은 참을 수 없다. 취업하지 못한 고통은 취업으로 피해 갈 수 있다. 그러나 관문 앞을 기다리는 궁전의 집사처럼 취업 이후에도 또 그 뒤에도 오늘날 체제가 부과하는 고통은 순서대로 찾아온다. 살아남을 수는 있겠으나 끝내 공허와 환멸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괴로워 울고 있는 녀석에게 "괜찮다"고 위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네 양심이 너를 살아 있게 할 거"라는 고귀한 이야기를 던지고 싶지도 않다. 고통의 해석학, 나는 녀석에게 이 거대한 불가능성을 응시하고, 그 앞에서 실존을 건 질문을 던질 것을 권한다. 그리고 같은 불가능성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들의 손을 잡을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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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게 가난한 사회, 
이계삼 그리고 녹색당

여행당시 인도 캘커타의 한 고아원에서 지낸적이 있다. 
인도에 한달 가까이 있었으나
고아원에서 일주일을 먹고자며 지낸 그 시간이
내겐 인도였다.
고아원을 떠나며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아이들 사진을 보내줘야지'라고 다짐했더랬다. 
그 다짐이 책이 출판되면 미뤄지고
책 인세(가 나오거든)로 보내야지로 미뤄두었다. 
다행히 인세가 나왔고, 이제야
다짐을 지킨다. 
그날의 시간들은 이제 차츰 흐릿해진다. 
오금이 저리게 했던 큰개도 
선교사님이 매일밤 해주던 이야기도.
하지만 분명한건 내가 아이들을 찾아간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만나준것이고
아이들이 나와 놀아주고
나를 안아준것이라는 것이다.
웃음과 순수. 
그 시간을 기억하며. 
가슴과 가슴이 닿는 곳
박진균 선교사님께

오늘 마을에 장터가 열렸다. 
아침저녁 돌보며 가꾼 모종을, 
직접 사용했던 아나바다를, 
손수 준비한 먹거리와 공예품을,
모두모여 봄맞이큰장을. 
(찍지 못한 현장 사진은 다음에...)
한달 전부터 준비된 큰장. 장터의 문을
풀무농고 풍물패 친구들이 열어주었다. 
어깨가 절로 들썩들썩. 

꿈이자라는뜰, 원예조합 가꿈, 풀무농고, 홍성 씨앗도서관, 행복농장. 백여 종이 넘는 모종을 가져왔다. 
모종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정성이 필요한지
간접적으로만 보았다만, 모종장의 흥행을 빌었다. 
정작 본인들은 퍼주는데 더 집중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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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먹거리가 나왔다. 
고등학생 친구들이 호기롭게
철판을 갖고 나왔다. 메뉴는 오코노미야키. 
'동네마실방뜰'의 새로운 메뉴, 수제버거도 선보였다. 결과는 두팀 모두 완판.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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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회전다트로 재미본 의료생협
이번엔 동전던지기 판을...
사행성 조장은 느낌 아닌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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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경매가 열렸다. 
품목은 마을 목수집에서 나온 원목침대.
큰장 사상 최고판매가 기록. 
경매를 지켜보는 이들의 탄성과
참가자들의 침넘기는 소리
흥미진진사모네의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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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공대 대모집'이라는
미명으로 봉사대가 모여
쓰레기 없는 장터를 위한 결사항쟁. 
(사진 참고)
특공대의 고움(및 사람들의 작은 불편)으로 일회용 쓰레기가 많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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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기증해주신 분들과
일꾼들 식사를 주신 분들
후원금을 내신 분들
각 부분에서 일손을 주신 분들을 기억하며
한달간 준비한 봄맞이큰장을 마친다.

차를 발로 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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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놀라유! (주병근​)
자존심 대결로 번진 초성게임(ㅊ/ㅁ)과
사랑과시로 번진 민호형과 금애이모
아재임에도 아재를 증명하지 못한 동근님...
아재개그로 밤이 넘어가고
홍동오락관의 밤도 깊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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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재개그 하면서 놀거라던
2주 전 (차범근​)님의 저주는 현실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이동호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요즘 저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며, 독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며, 복싱장을 다니며, 멋진 분들을 만나며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주, 영광스럽게도
두 분께 각기 다른 캠페인 지명을 
받았습니다.

(두 분께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의 의미를 다시 돌아볼 수 있도록 해준, 세화야. 고마워!
희귀하기에 소수인, 소수이기에 약자인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함을 일깨워주신 한혜경 작가님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나름의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캠페인 제안자 분들이 원하는 건 세상의 변화와 개인의 책임이 아닐까.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책임감을 갖고 세상을 변화시켜나가는 것. 더 나은 사회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 이것이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도록 디자인된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무엇을 할수 있을까요.
사회 소수자들을 돕는 것도 좋고,
감사함을 잊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군인으로 10년, 
저는 정치적 중립을 교육 받았습니다.
세월호는 정치적인 일이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일입니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상태를 보여준 현상이었고, 지금 우리는 그 병을 치유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있는 것입니다.

권투장에 다닌지 8주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힘들었던 줄넘기도 꾸준히 하니
점점 나아감을 느낍니다. 
고통없는 운동(건강) 없다는
영제의 말이 생각납니다.
역사의 진보도 그렇지 않을까요.
몸이 건강해지는 것처럼,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과정에도 고통이 따르는 게 아닐까요.

저는 오늘 고통을 나누고자 광화문을 찾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발생 137일째, 
공식적으로 동조 단식 참여자가 2,500여명을 넘었습니다.
합리주의의 탈을 쓴 회의론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천국은 기쁨만 있는 곳이 아니라 
슬픔을 다함께 위로하는 곳일테니까요.

건강한 사회가 되고,
권력이 다수에게 배분 되어가는,
역사의 진보를 믿는 편에 서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덧. 
1) 수사권, 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을 지지합니다.
- 거짓을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진실이 흐려지고 있습니다.
유가족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은
대한변호사협회와 함께 만든 법입니다.
위헌이 아닙니다. 

2) 제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마음의 변화가 있으신 분이 있다면...사회 변화를 위한 행동을 부탁드립니다. 1일 동조단식에 참여해주셔도 좋고, 원래 제가 지명받은 아이스버킷 챌린지, 감사 일기를 써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책임있는 행동 한가지 부탁드립니다. 
알아야 행동할 자격이 있는게 아니라, 아시는 만큼만 참여해주시면 됩니다. 앎은 책임의 다른 이름이니까요.

3) 기본 방침대로 3분을 뽑겠습니다.

진주 뮤지컬 클래스 맏형이자 친구 고건진,
여행중 제게 도전을 줬던 동생 우상규,
희망제작소에서 함께 인턴생활을 했던
놀라운 능력의 보유자 김지수
입니다.



초딩입맛이던 아니던
돈까스는 진정 국가공인 마약이다.
돈까스의 유혹은 참을 수 없다.
삼겹살은 삼겹살은 말해 입아프다.
군대 짬밥에는 매일 고기반찬이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제
인간의 육식은 건강의 문제를 넘어 안전의 문제가 되었다.
아래 글은 채식의 변이랄까. 나는 채식(지향)을 선택한다.
지역신문에 기고란걸 처음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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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하고 안심 먹는 날을 위하여.
개인의 선택을 넘어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그게 국가와 나의 계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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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유전자조작식품)와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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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은 맛있다. 회식, 외식, 소풍, 어디서나 어울린다. 가을비 소리를 닮은 지글지글 구워지는 소리. 군침 도는 기름 냄새. 쌈장과 마늘, 깻잎의 조화는 분명 하늘에서 내린 맛이 아닐까. 며느리를 돌아오게 하는 게 가을 전어라면 사춘기 아들을 방 밖으로 나오게 하는 건 삼겹살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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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채식을 선택한 건 최근의 일이다. 고기로 인한 건강의 문제는 섭취량을 줄이는 것으로 감수했다. 옆 마을 공장식 축사는 비난 한 번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건강과 생활 이전의 근본적인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안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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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논란을 다시 떠올린다. 높은 생산성을 원했던 인간은 소에게 동물 뼈를 먹였다. 그리고 소 대뇌의 바깥 부분-대뇌피질은 스펀지화 되어버렸다. 인간에게 같은 증상이 나타난 건 10여 년 후다.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으면 인간도 광우병에 걸릴까. 이는 아직 연구 중이다. 하지만 ‘연관 있음’은 학계의 유력한 설이다. 광우병은 인간이 만들어낸 천벌이며, 간접 섭취가 절대 안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울타리- ‘종간장벽’을 넘어설 수 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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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나와 있는 고기(돼지, 소, 닭 등) 모두가 GMO를 먹고 자란 동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세계 사료용 GMO 수입 1위 국가라는 한국, 이 GMO의 대부분을 거대 사료업체에서 유통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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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초식이 더 건강한지 육식이 더 건강한지 이 글에서 논의할 바 아니다. 문제는 육식이 건강의 문제를 넘어, 안전하냐의 문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더 기본의 문제로 밥상 품격이 추락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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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과 쿡방이 흥행이다. 오랫동안 무시되어온 ‘식食-살림’의 가치가 널리 이야기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직은 맛을 위한 식食만 나오지만. 한번은 먹거리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형에게 말한 적이 있다. 곧 아이를 낳을 형 내외에게 먹거리는 중요 관심사였을 법하지만,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그런 거 다 따지면 먹을 게 없어.” 유난스러운 내게 형의 대답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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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은 기본 권리다. 국가와 시민은 계약관계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국민 식탁에서 불량식품을 뿌리 뽑겠습니다.” 농사를 지어보면 잡초가 힘들다. 씨가 맺히고 뿌리를 뽑으면 늦다는 걸 우린 기억해야 한다. 안심하고 삼겹살을 먹고 싶다.

http://www.h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7332


땅에 뿌리내린 삶을 위하여

최근 노사정 타협이 이슈입니다. 개정이라 쓰고 개악이라 읽는 노동법 개정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마저 넘어서려 하고 있습니다. 고양이에겐 생선을 사용자에겐 해고권을.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잠시 한숨을 내쉽니다.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 불린다는걸 아시는지요. 그리고 우린 자살율 1위인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열심히 노오력 해서 타파되는 무엇이 아닙니다. 지금의 고비를 넘기면 괜찮아지겠지, 곧 악몽에서 깨어나겠지... 

사람들은 여전히 일자리 정책에 집착합니다. 완전고용. 마치 더좋은 일(자리)이 창조된다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듯. 자동화, 기계화는 앞으로도 꾸준히 사람의 영역을 줄여나갈 것입니다. 고용없는 성장은 기업가(주주)가 물론 욕심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여서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미래가 알면서도 젊은이들을 취업전선으로 내모는건 벼랑끝으로 내모는 것 아닐까요.


“뭐하고 살려고?"

1년 전 귀촌을 결정하고 도시생활을 정리하던 중 입니다. 평소 운동을 다니던 체육관에 이를 말했습니다. “관장님, 저 다음주에 시골에 내려가요.” "아, 그러니...그럼 어쩔수없지 하지만 관장님은 '하, 내가 복싱장 그만두는 놈들 별의별 변명은 다들어봤는데 이런 거짓말은 처음이야' 싶은 표정을 었습니다.) 한 번 더 정색하여 말씀드리니 그제야 믿는 눈치였습니다. 그리곤 곧 도시 낙오자를 바라보듯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표정은 귀촌한 저를 바라보는 주변분들의 시선이네요.

 집도 절도 없이 내려온 홍성. 도시엔 일자리가 없다지만 농촌엔 하다 죽을만큼 많은 일자리가 있습니다. 네, 소득이 적을 뿐이지요. 농촌 경제는 농업이 기반이니까요. 두번 말하면 눈아플 정도로 모두 알겠지만 지금 우리의 농업은 망가질대로 망가졌습니다. UR(우루과이라운드), FTA(자유무역협정), 저곡가 정책 등. 본전을 벌어도 다행인 농업현실. 낙후된 생활 기반은 덤입니다. 
작물에 농약을 치던가, 내목구멍에 농약을 쳐넣어야하는 현실을 알면, 농민 후려치는 대형마트 농산물이 다르게 보이겠죠. 거기서 장을 보는 내자신이 다르게 보이겠죠. 식민지는 멀리 동남아에만 있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먹고 쓰는 것들,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보신적 있나요. 치킨, 삼겹살은 어디서 길러지는지, 전기는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떻게 오는지, 내가 버린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지.

일본의 발명가 후지무라 야스유키가 쓴<3만엔 비즈니스,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하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가 책에서 말하는건 수도자처럼 욕망을 절제하며 단촐히 살자는게 아니라 우리 소박하게 벌고 삶의 본질에 충실하자 입니다. 실제로 내려온 농촌. 저는 마을일을 하고 있습니다. 농촌에서의 삶, 마을 일은 참으로 멋집니다.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사는 마을 위한 일이라는 것,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점.

봄이되면 잠들었던 땅을 깨우고 씨앗을 심는것, 생명이 자라는 과정을 살피고 가을이면 수확하는 것. 뿌리고 거두기. 모든게 분절된 도시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삶의 완전함이있습니다. 먹꺼리라는 생산기반을 갖고 있고 공동체(선물의 경제)가 미약하게나마 살아있는 농촌.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하기는 가능합니다. 


"청년, 땅에 뿌리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게 과연 지속가능할까?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농촌에 오는 만큼 많은 청년이 농촌을 떠납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청년들부터 도시로 떠난다는 사실입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농촌의 특징은 생활비는 적게 들지만, 정착비는 높게 듭니다. 먹고 사는 건 지장없는데, (집이나 땅)삶에 안정감을 가지는덴 큰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도시에서 어느 정도 돈을 벌어오는 경우는 정착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청년이 농촌벌이로 집을 갖는다던가, 땅을 산다는건 힘든 상황입니다.

준비된 토양에서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건 우주의 법칙입니다. 우리 지역이 준비된 지역인가 되물어봅니다. 우리 스스로 성찰없이 무작정 청년들을 농촌으로 내몬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백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공재였던 것들이 사유화 되버린 현실. 농촌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땅에 뿌리내린 삶. 하지만 땅 없는 농촌.

농촌의 토지문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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