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이 흙 미장을 완료해가고 있었습니다. 바깥쪽 벽만 막으면 될줄 알았습니다. 집 안쪽 벽은 방심.
혹시나 옆 도배지를 뜯어보았습니다. 쥐가 사는 집은 단독 주택이 아니라 연립주택이었습니다. 요즘 말로는 쉐어하우스. 바깥 벽을 뚫고 들어온게 아니라 (그 구멍은 연막이었던 것입니다) 나무 기둥을 뚫고 밑에서 올라온 것입니다. 엘레베이터랄까요. 쥐똥으로 가득찬 쉐어하우스.
하던 미장을 멈추고 나와 잠시 바람을 쐽니다. 늦가을의 하늘은 쨍합니다. 그대로 벽지를 덮을까 잠깐(백 번) 고민. 아니지 그건 아니지. 남겨둔 구멍 하나로 모든 일을 허사로 만들 순 없습니다. 이 집엔 저 혼자. 제가 처리해야 하는 것입니다(엉엉)
십여 년이 지났지만 군대에서 받은 화생방(가스) 훈련은 잊히지 않습니다. 매캐한 가스를 마시며 눈물콧물로 옷을 적시던 그날. 오늘 그 실전이 있었습니다. 전투모를 뒤집어 쓰고 쥐방으로 돌격. 방독면은 없어 숨을 참고 쥐똥을 쓸어담습니다. 아, 이 새ㄲ들은 먹고 똥만 싸나 이런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오염된 신문지를 교체해가며 임무를 진척합니다. 한 번 두 번. 먼지를 줄이려 물을 뿌렸더니 오줌내가 진동합니다. 혐오감에도 빠지면 안 됩니다. 시골에 살며 온갖 똥에 익숙해졌습니다. 소똥, 개똥, 염소 똥, 내 똥. 그 중에 제일은 내 손으로 치우는 똥 침착하자. 침착해. 이것은 흙이다.
그순간 앗, 모자가 흙 위로 툭 떨어졌네요. 동시에 오른손이의 AI 기능이 작동됩니다.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올리려 이마로 돌진. 흙만진 오른손이가... 우리 지금까지 잘 지내왔잖니... ㅜㅜ
긴 겨울, 시골집이라면 쥐가 찾아오기 마련. 적당한 긴장과 구역을 나눠오던 우리. 서로 인정하며 살 수 있다고 믿고 싶었죠. 길목에다 설치한 끈끈이를 보란듯이 쥐구멍 앞으로 끌어다 놓는 대범함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우리사이가 가까워짐을 느낀 것은 지난 겨울. 옷장 한켠 낭자한 똥오줌과 채썰어 먹은 옷가지를 본 것입니다.
올초, 따듯한 계절이 되어 쥐들은 제 살 길 찾아 떠났습니다. 그래 안녕. 내 인생에 쥐는 없는거야.. 마늘 양파나 심으며 겨울을 맞이하... 고 싶었습니다.
엊그제 벽속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 사각사각.. (침이 꼴깍) 숟가락으로 열심히 구멍 파는 빠삐용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서둘러 쥐구멍만 막으려했습니다. 내 상상속 쥐구멍은 구멍인데 벽지 뒤에 있는 것은 틈. 흙벽과 나무기둥이 간헐적 만남을 하고 있었습니다. 혹은 졸혼. 구멍이라는 1차원의 점과 틈이라는 2차원의 선. 서둘러 황토 미장을 샀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마무리 될지. 겨울 전엔 끝날 수 있을지. 쥐똥 같은 눈물이 또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