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언제나 맑고 아름답게 밝아 오고, 저녁이 항상 시원하고 상쾌하게 내려앉는 동안,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샘은 어깨의 짐 보따리를 헐겁게 하고 머릿속으로 거기에 든 물건을 하나하나 더듬어 보면서 빠뜨린게 없는지 점검해 보았다. 먼저 가장 중요한 장비인 취사 도구,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채워 넣는 작은 소금 통, 상당 분량의 연초(틀림없이 모자라겠지만), 부싯돌과 부시, 털 양말, 아마포, 그리고 프로도가 잊은 잡동사니들도 있었는데 샘은 그것들이 아쉬울 때 의기양양하게 꺼낼 작정이었다. 

그날 그들은 시원한 저녁이 찾아와 나뭇잎 사이로 초저녁 바람이 콧노래를 흥얼거릴 때까지 계속 걸었다.

그들은 그의 경쾌한 발걸음을 따라 산뜻한 잔디로 뒤덮인 비탈을 올라갔다. 프로도는 분명히 숨을 쉬고 있고, 얼굴에 와 닿는 찬바람은 주변의 살아 있는 꽃과 나뭇잎에도 스쳤지만 자신은 변하지 않고, 쇠하지 않고, 망각의 세계로 떨어지지 않는 무시간의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그 세계를 지나 다시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하더라도, 샤이어의 방랑자 프로도의 마음은 여전히 아름다운 로스로리엔의 엘라노르와 니프레딜 꽃들 사이로 풀밭 위를 거닐고 있을 것이다.

프로도는 오를 준비를 하면서 사다리 옆의 나무에 손을 대 보았다. 나무껍질의 촉감과 결을, 그리고 거기에 든 생명을 그렇게 갑작스럽게, 그렇게 예민하게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목수도 산지기도 아니면서 나무와 나무의 촉감에서 어떤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나무 그 자체의 기쁨이었다.

로리엔의 분수 옆에 앉아 요정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의 생각도 서서히 아름다운 노랫가락으로 모양을 갖춰 갔다. 하지만 샘에게 노래를 들려주려고 시작할 때마다 마치 한 줌의 부스러진 낙엽처럼 노래는 산산이 흩어지고 작은 구절들만 희미하게 남곤 했다.

나뭇잎과 나뭇가지, 물과 풀, 우리가 사랑하는 로리엔의 첫 새벽에 비친 이 모든 것들의 빛깔과 아름다움이 이 옷들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모든 물건에 사랑하는 모든 것들의 생각을 담기 때문이지요.

그의 눈에 비친 그녀는 이미 후대인들이 이따금 연상하는 그런 요정의 모습이었다. 존재하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고 유장한 시간의 흐름 속으로 저 멀리 사라져 버린 그 무엇인가의 살아 있는 환영이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슬픔이며, 이 시대에 대지 위를 걸어다니는 모든 이들의 슬픔이라고 해야 할 거요. 흐르는 강물 위로 배를 타고 갈 때 보이는 풍경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이것이 인생이지. 하지만 글로인의 아들 김리, 자넨 축복받은 존재요. 자네가 슬퍼하는 그 상실은 자네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거요. 자네는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있었소. 하지만 자네는 동료들을 저버리지 않았고, 따라서 자네가 누리게 될 최소한의 보상은 바로 영원히 자네 가슴에 생생하게 또 깨끗하게 남아 있을 로스로리엔의 추억이지. 그것은 사라지지도 않고 썩어 없어지지도 않는 추억이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거기에 있는 동안 우리는 어디선가 오래전에 지나가 버린 시간 속에 머무른 거야. 내 생각에는 은강을 따라 안두인대하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현실의 땅을 지나 대해를 향해 흘러가는 시간 속으로 되돌아온 것 같아.

거기선 시간이 늦게 간다고 할 게 아니라, 변화와 성장이란 것이 사물과 장소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고 해야 맞을 거요. 요정들에게도 세계는 움직이는 거요. 매우 빨리 움직이기도 하고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도 하지. 빠르다는 것은, 그들 자신은 전혀 변하지 않지만 그 외의 다른 것들이 덧없이 지나가기 때문이요. 이것이 그들에겐 슬픈 거지. 느리다는 것은, 그들이 흘러가는 세월을 세지 않는다는 뜻인데, 아무튼 그들 자신을 위해서는 세질 않지. 지나가는 계절이란 길고 긴 강물 위에 끝없이 반복되는 파도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태양 아래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끝이 있게 마련이오.

레골라스는 벌써 일어나 어두운 북녘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바람 한 점 없는 어둠 속에 서 있는 한 그루 어린 나무처럼, 상념에 젖어 고요했다. 



(글쓴이의 말) 마침내 <반지의 제왕>이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 작품의 동기와 의미에 관해 독자들로부터 많은 의견이나 추측을 받기도 했는데, 이에 관련하여 여기서 한 마디 하고자 한다. 일차적인 동기는 정말로 긴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욕망이었다. 읽는 이의 관심을 끌어, 그들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고, 때로는 흥분 시키기도 하고 또 깊은 감동까지 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무엇이 재미있고 또 감동적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내가 지침으로 삼은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감각뿐이었고, 그 지침은 종종 많은 이들에게 틀렸다는 판정을 받았다.

 알레고리나 시사적 언급을 좋아하는 이들의 취향이나 생각에 따라 다른 식의 각색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방식이든 알레고리는 정말로 싫어하며, 나이가 들어 그것의 존재를 간파할 수 있을 만큼 조심스러워진 뒤로는 항상 그렇게 해 왔다. 나는 독자들의 사고와 경험에 대해 다양한 적용 가능성을 지닌 역사를 (그것이 사실이든 허구이든) 더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은 ‘적용 가능성’과 ‘알레고리’를 혼동한다. 전자는 독자의 자유에 근거하고 있지만, 후자는 작가의 의도적인 지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작가는 물론 자신의 경험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이야기의 맹아가 경험이라는 토양을 활용하는 방법은 엄청나게 복합적이고, 또 그 과정을 밝히고자 하는 시도는 기껏해야 부적절하고 애매모호한 증거로부터의 추측에 불과하다. (…) 전쟁의 억압을 충분히 느끼기 위해서는 전쟁의 그림자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아야 한다.


그들은 대장간의 풀무나 물방앗간, 베틀보다 복잡한 기계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잘 알지도 좋아하지도 않지만, 연장을 다루는 솜씨는 뛰어나다. 심지어 예날에도 그들은 ‘큰사람들(그들이 우리를 부르는 이름)’을 보면 대체로 겁을 먹었고 지금도 우리를 만나면 놀라서 피한다. 그래서 만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들은 청각과 시각이 예민하고, 또 몸이 통통하고 쓸데없이 서두르는 법이 없지만, 그래도 동작은 민첩하고 재치가 넘친다. 그들은 만나고 싶지 않은 덩치 큰 자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면 재빨리 소리 없이 사라지는 방법을 일찍부터 터득했고, 그들은 이 기술을 인간들의 눈에는 마법으로 보일 정도로까지 발전시켰다. 하지만 실제로 호빗들이 무슨 마법을 공부한 적은 없다. 다만 사람들 눈을 잘 피하는 것은 오로지 타고난 자질에다 숙련, 그리고 대지와 깊숙한 친교로 인해 몸집이 크고 어설픈 종족들은 모방할 수 없을 만큼 전문 기술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프로도, 인간들은 위대한 반지들 중 하나만 가져도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어. 물론 더 성장하거나 힘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죽지 않고 생명이 유지되는데, 그러다가 결국은 순간순간이 권태로워지지. 그리고 만약 다른 사람에게 자기 형체를 감추기 위해 반지를 자주 사용하게 되면 몸이 점점 ‘소멸’되지. 그러다가는 영원히 우리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되고, 결국에는 반지를 지배하는 악의 세력이 감시하는 미명의 지대를 헤매게 되어 있어. 언젠가는 말이야. 혹 의지력이 강하거나 원래 선량한 사람이라면 그 순간이 다소 지연될 수도 있겠지만, 의지력이나 선량함이라는 것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일세. 결국엔 악의 세력에 사로잡히고 만다는 것이지.

그것들은 깊은 심연에서 튀어나온 듯 아득하면서도 대단히 밝은 빛을 뿜고 있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지만 어젯밤 이후로 제 자신이 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시야가 좀 트였다고 할까요? 저는 우리가 매우 먼 길을, 어둠 속으로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것도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요정이나 용이나 산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저 자신도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일이 끝나기 전에 제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은 샤이어가 아니라 저 바깥세상에 있다는 거예요. 저는 그 일을 끝까지 해내고 말 거예요.

지금 까지의 그의 삶은 뒤편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앞에는  어두운 모험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졸음이 땅에서 기어나와 다리로 기어오르는 듯했고, 공중에서도 내려와 슬며시 그들 머리와 눈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의 늙은 발 밑에는 대지가 있고, 그의 손가락 위에는 흙이 있고, 그의 뼛속에는 지혜가 있고 그의 두 눈은 열려 있네.”

밤은 자신이 잃어버린 아침을 비난하고 있었고 추위는 자신이 갈망하는 더위를 증오하고 있었다.

황금이라고 해서 모두 반짝이는 것은 아니며,
방랑자라고 해서 모두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속이 강한 사람은 늙어도 쇠하지 않으며,
깊은 뿌리는 서리의 해를 입지 않는다.
잿더미 속에서 불씨가 살아날 것이며,
어둠 속에서 빛이 새어 나올 것이다.

그의 머리 위로 별이 빛나는 검은 하늘이 숨죽이고 있었다.

절망이나 어리석음이라고요? 절망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절망이란 의심할 바 없는 끝장을 바라보는 이에게만 어울리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가능한 방법을 검토해 본 뒤 남는 필연을 인식하는 것은 오히려 지혜입니다. 거짓된 희망에 매달리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우둔하게 보이겠지요. 좋습니다. 우리의 겉모습, 적의 눈에 보이는 가면은 어리석음이라 합시다! 왜냐하면 그는 매우 현명하니까 자신의 악의 저울로 모든 일을 정확하게 측정할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척도는 욕망, 오직 권력을 향한 욕망뿐입니다. 그는 타인의 생각을 모두 그런 척도록 판단합니다. 어느 누가 반지를 거부한다거나, 우리가 그 반지를 파괴하리라는 것을 그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매우 어려운 길이지요. 하지만 강한 이나 지혜로운 이는 멀리까지 갈 수 없습니다. 그 길은 강한 자만큼의 희망을 가진 약한 이가 가야 하는 길입니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인 것은 사실 그런 방식이었습니다. 강자들의 눈이 다른 곳에 닿고 있는 동안 작은 손들은 바로 자신들이 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 일들을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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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위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ㅡ 2. 소매치기를 당했음다 (2)

전화가 끝나자 우리는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 꼬마 일당이’... '내 모바일을’... ‘훔쳐갔다’…
'동료들을 불렀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경찰이 말했다.
'여기 의자에 앉아 기다려라' 라고 아이도 말했다. 마치 파출소 소장님처럼 아이는 말했다. 경찰 청년은 그 장난이 어이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원래 에티오피아 경찰 취조가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아이를 동네 개 패듯 때렸다. 먼저 긴 팔로 꼬마의 뺨을 때렸고, 이것이 경찰봉이다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아이는 바닥에 뒹굴며 울고불고 소리를 질렀다. 험악해진 분위기… 괜히 애를 잡아와서 이런 일을 겪게 만든 걸까 드는 자책감. ‘없어진 물건이 사실은 없어도 되는 물건이니 그만하시죠’ 라고 말해야 하나.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구타가 끝나고 경찰은 우리에게 질문을 했다(파출소 앞을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통역을 해주었다). 아이들이 잡지를 들고 있었다던가, 일당이 대여섯이었다던가, 어디서 당했다던가 등 자초지종을 조금 더 세밀하게 설명했다. 영어를 잘하는 일본 친구 덕분에 나도 가만히 그 자초지종을 들었다. 경찰 청년 너머로 (바닥에) 앉아 있는 아이가 보였다.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어째서 이 아이는 학교도 안 가고 소매치기를 해야만 했을까. 이 녀석을 소년원에 보낸다면 이 녀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떤 게 이 아이를 위한 길일까. 그런데 이 녀석… 죄책감은커녕 ‘집에 가면 뭐하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울고불고했던 그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내가 처음 잡았을 때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었다. 덤덤한 표정. 
 갑자기 일본 친구가 꼬마에게 말했다. “어쩌고저쩌고(영어)... (나한테) 사과해라”
꼬마는 무릎을 꿇으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방금까지 '집에 가면 뭐하지?’의 얼굴이, 자신에게 시선이 모이자 순식간에 울먹거리는 얼굴로 변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무릎까지 꿇으면서. 연극을 보는 것 같은 기분.
잠시 후 다른 경찰들이 왔고 그들은 꼬맹이 일당을 찾기 위해 그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몇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전혀 처음 보는 다른 아이 둘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 아이는 어디 갔을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에티오피아에서는 아이들을 소년원에 보내지 않는단다.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소매치기를 보낸다고.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소매치기를 하는 것도, 재수 좋게 어벙한 여행객(나)의 가방을 터는 것도, 재수 없게 붙잡히는 것도, 얻어터지는 것도, 무릎 꿇고 비는 것도, 그 열살 남짓한 아이에겐 그저 일상이 아닐까 하는. 내가 어렸을 때 학교는 당연히 가야 하는 거야라고 학습된 것처럼 그 아이는 소매치기를 했어야만 하는 것이고 경찰 청년은 아이를 때렸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까지 이미 여행을 250여 일이나 했으나, 그제야 나는 걸리버가 소인국에 떠밀려 간 것처럼 누군가에게 비정상이 누군가에겐 일상이 되는 곳에, 다른 사회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과 나, 우리 같은 사람이지만 사는 사회가 다르므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사람이 사회를 만들지만, 또 사회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사회는 어떻게 변화되어가는 걸까.
무엇이 사회를 변화시킬까.

제사에 제물이 필요하듯, 그날 사라져버린 전자책 단말기가 내가 잊고 있었던, 하지만 나로 하여금 여행을 떠나게 했던 질문들을 마주하게 해준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18개월 여행의 절반이 남았지만 귀국을 결심했다.





Lambeth North 버스 Information (사진을 크게 보시려면 PDF파일을 클릭하세요)

lambeth-north.pdf


1. 버스 스탑 설명

2. 정차 버스 번호, 진행 방향, 버스 스탑.

3. 버스 스탑 위치

4. 각 번호별 진행 방향(종점)



1. 버스 스탑 성명

 - 런던 버스 정류장은 이름(Lambeth North)과 버스 스탑(A)로 나눠지며,

    버스 스탑 밑에 쓰여진 번호만 그 버스 스탑(정류장)에 정차 합니다.

    (밑에 그림의 예 : 버스 스탑 A, 정차 번호 1,2,3,4,5,6)

    (버스를 탑승 전에 꼭! 버스 스탑을 확인 바랍니다.)



2. 정차 버스 번호, 진행 방향, 버스 스탑.

 1). 정차 버스 번호

 2). 24간 운행 유/무

 3). 버스 진행 방향(종점)

 4). 버스 별 버스 스탑(정류장)




3. 버스 스탑 위치

 - 각 정류장 유리에 붙어 있으며, Lambeth North의 모든 버스 스탑의 위치를 나타냄




4. 각 번호별 진행 방향(종점)

 - 버스의 루트와 종점을 한눈에 확인 할 수 있음.


5. 버스 타는 방법. 

 상황 1. 본인은 Lambeth North에 있고 Trafalgar Square에 가고자 한다.

 1). 가장 큰 지도에서 Trafalgar Square를 가는 버스를 찾는다. → 3, 12, 453, 159

 2). "2. 정차 버스 번호, 진행 방향, 버스 스탑"을 보고 진행방향과 버스스탑을 확인한다.

   3번 버스 : 진향 방향 "Oxford Circus", 버스 스탑 "F"

   12번 버스 : 진향 방향 "Oxford Circus", 버스 스탑 "B, N"

   453번 버스 : 진향 방향 "Marylebone", 버스 스탑 "B, N"

   159번 버스 : 진향 방향 "Paddington Basin", 버스 스탑 "E, G"

 3). "3. 버스 스탑 위치"에서 각 버스 스탑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 후, 이동하여 탑승








한 달 전 에티오피아에 도착했던 날,


상큼하게 소매치기를 당했다. 이집트에서 밤새 비행기를 탔던 날이라 정신이 끔뻑끔뻑했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중에 정신이 오락가락하실 때 사용해보시길!) 범인은 10살쯤 되는 코흘리개 꼬맹이들이었다. 녀석들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내게 잡지를 파는 것처럼 다가왔다. 차가운 도시 남자인 나는 아이들을 무시하고 걸어갔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잡지에 가려졌던 시야 사이로 내 지갑을 꺼내 가고 있는 손이 보였다! 이런 귀여운 녀석. 그 손을 잡고 너 이러면 못쓴단다. 적당히 훈계하고 뒤돌아섰다. 하지만 왠지 내 가슴 한구석 허전한 기분이. ‘뭔가 찹찹한 이 기분 뭘까…….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 다른 말을 해줘야 했을까.' 아니 그건 줄어든 내 앞 가방의 무게였다.
… 전자책 단말기가 없어졌다… 지갑을 꺼내기 전에 이미 가져갔구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쑥스럽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내 입으로 말하자면 난 학창시절 운동회 때 곧잘 반 대표로 달렸던, 좀 뛰던 남자였다. 운동회날 손목에 찍힌 1등 도장과 상품으로 받았던 공책이 생각난다. '또 1등이네'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면서도 그 도장이 지워지지 않도록 조심히 씻었던 날이, 상품으로 받았던 공책들이 기억난다. 공책은 결국 한, 두 쪽만 쓰다 버렸지만. 아무튼 그 능력을 드디어 공책 타는 곳이 아닌 곳에 쓸 기회가 온 것이다.
분노의 추격…을 시작했지만, 그 꼬맹이들, 내 뒤에서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 5초 만에 종료된 추격전.

한 꼬마를 잡았는데 그 꼬마 붙잡히자마자 울고불고 소리를 질렀다. 동양인이 아이를 붙잡고 있으니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내가 잡고 있는 꼬마는 울고 소리를 지르고 주변 사람들은 에티오피아 말로 뭐라고뭐라고 하니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어느 분의 도움을 받아 파출소를 갈 수 있었다. 동네 파출소였던 그곳은 컨테이너 정도 크기의 목제 건물이었다. 나무 책상과 의자 한 세트, 역시 나무로 만들어진 감옥(으로 보였는데 사람들은 여기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범죄 지표 따위가 그려진 종이들이 벽에 붙어있었다. 창문이 좁아 낮이었음에도 어두웠던 파출소, 그곳에는 한 청년이 흡사 그림자 속에서 어둠의 색으로 색을 바꾸고 먹이를 기다리는 카멜레온과 같이 앉아 있었다. 그 청년은 러닝셔츠 차림이었는데, 우리가 갑자기 우르르 들이닥치자 (내 눈에는) 서부마을의 평화를 지키는 보안관처럼, (내 눈에는) ‘사건인가’라는 표정을 지으며, (내 눈에는) 멋지게 단추를 천천히 채우며 경찰 셔츠를 입었다.

그가 영어를 전혀 못 했기 때문에 우리는 손짓 발짓으로 상황을 브리핑했다. 
‘이 녀석 일당이’... ‘내 가방에서’... '내 모바일을’... ‘훔쳤다’...
잠깐의 침묵. '…… 오케이’ 그는 난색한 표정을 지으며 곧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계속)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친환경 파출소...




[이것도 여행이라고] 


 시간이란건 강물처럼 흘러간다. 그리고 어느새라는 말 외에는 표현하지 못할 만큼 저 멀리 흘러가버린다. 나의 배낭여행도 어느새 200일 하고도 79일이 흘러 마무리가 됐다. 사실 18개월 여행을 계획했지만, 그 중간 즈음인 9개월째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행을 떠나기 전 10년, 나는 직업군인이었다. 안정된 직장이란 것이 있었고 승진이란 것도 해보았다. 공부가 하고 싶을 땐 야간대학에 다녔다. 내 집과 차를 가져보았고, 사랑도 해보았다. 원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경험해보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나를 채워주진 못했다. 이렇게 저렇게 퍼즐을 맞춰보아도 도무지 만족할 수 없었다.

 작년 2월 군대를 떠났다. 기세 좋게 전역했지만 10년의 관성을 벗어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모님을 설득하지 못해 전역 신청 사실을 통보해야 했고, 당장 보험금 납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으며, 누우면 3분이면 잠드는 나지만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들이 있었다. 어쨌든 삶이란 망망대해에 돛단배를 띄운 것이다. 그리고 한 달 후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동해항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로, 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까지. 이제와 돌이켜보면 개울물이 흐르듯 순조로웠던 길이였지만 그때그때 그 날들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운 시간이었다. 작은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져야 했고 막혀있는 길이 있으면 새로운 길을 만날 때까지 돌아가야 했다.

신 어벙류 인간의 어설픈 여행

 인도 여행 당시의 일이다. 콜카타로부터 40시간의 기차 여행 후, 도착한 델리역은 어두운 새벽이었다. 기차에서 내릴 때부터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 장이 꼬이는 느낌. 그 느낌은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이 되었다. 어서 똬리를 틀라는 변 사또의 폭풍 같은 불호령. 인간지사 재수라는 게 뭐 항상 그런 거지만 어두컴컴한 델리역 주변에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다. 나락으로 간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고작 대소변으로 짐승과 인간을 구분한다면 그건 슬픈 일일 것이다. 난 인간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그 짧고도 길었던 천고의 시간, 인도는 실로 철학의 나라였다.
 이 일이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동안 있었던 최고의 위기가 아닐까 하는 게 이번 279일의 여행이다. 내가 생각해도 뭔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어설픈 여행……. 그렇지만 이런 나조차도 말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은 듣던 것만큼 무시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납치를 당한다느니, 사진을 찍고 보니 모든 짐이 사라졌다느니 그런 곳이 세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행이란 게 즐겁고 유쾌한 것만도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오히려 대부분 고독한 날들이 연속되었다. 여행이 본디 외로운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야 슬쩍 깨닫고 있지만, 그전까지 나는 끊임없이 나를 잃어야 했다. 매일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나를 새롭게 만들고 정의해야 했다. 울타리를 넘어가 어두움 앞에 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두려웠다. 나를 잃게 되는 게 아닐지 아무것도 아닌 여행이 되는 게 아닐지.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이 뭔지 몰랐던 것 같다.

 어벙류 인간인 나는 반응이 느리다. 직접 겪은 일도 우적우적 되새김질하지 않으면 내 경험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여행하는 동안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아야 했다. 느릿느릿 걸으며 지난 일들을 되새겨 보아야 했다. 느린 여행이었다. 적어도 하루, 이틀씩 더 느리게 움직여야 했다. 그런 와중에 내 못난 모습도 보아야 했고, 전역함으로 포기했던 '가지 않은 길'도 보아야 했다. 자괴와 의구심의 늪은 항상 발밑에 있어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늪 속에 잠겨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왜 여행을 해야하는가를 찾아서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우리가 변한 게 아니라 우리가 변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것이다'고 김연수 작가는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한가지는 변해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새롭게 흘러오는 세월을 맞이해보고 싶은 게 아닐까. 결국 여행이란 것도 변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화장실을 찾지 못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했었던 그 궁색한 시간 속에서도 세월이 조금은 흐르지 않았을까.
 여행을 할 때 좋아 보이는 것을 하지 않는 건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 어디에선 무엇을 먹어보아야 하고, 무엇을 해보아야 하고 같은 ‘MUST DO’가 정말 많았다. 하지만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던 네온사인들 속에 나를 진정으로 이끄는 별은 없었다. 소란함을 줄여나가고, 불순물을 걸러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의 속성은 어둠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독하고, 외로운, 도망치고 싶은. 하지만 우리가 엄마의 자궁 속에서 태어났듯, 씨앗이 나무를 품고 있듯, 우리를 나아가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생명은 그 어둠 속에 있지 않을까. 나무가 뿌리를 내리듯 어둠 속에서 생명을 찾아가는 시간, 깊은 뿌리를 내려 세상과 만나고 대지를 움켜쥐는 과정이 여행이 아닐까.

 여행을 결심하던 날부터 그 경험들을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부족한 자신을 나눈다는 건 넘기 힘든 벽이었다. 200일 하고도 79일, 여행을 시작했던 처음의 그 자리로 돌아왔지만, 벽은 여전히 내 앞에 있고 부족한 경험과 실수를 나눈다는 건 여전히 부끄럽다. 하지만 누군가의 모자람이 누군가에게 채움이 되길. 지나온 어둠 속에서 나를 변화시켜준 빛과 향기, 때론 씁쓸했던 경험들, 세월을 이 여행기를 통해 함께 나누고 싶다.



영국의 사회개혁가 존 러스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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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즉 사랑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 
자신 삶의 기능들을 최대한 완벽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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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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