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는 유머감각을 잃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막상 여행을 해보니 
이런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더불어
바보같이 길을 헤매거나, 
외국인 친구들 사이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거나 하는 경험들이 이어지면 유머감각을 
잃는 것은 그 시작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여행자는 곧 자신(自身)도 잃어버립니다.
처음엔 외부 환경적으로 
다음엔 내면적으로.

외부 요소를 잃는 이유는
떠남의 선택으로 인한 자발적인 이유와
주변 환경이 바뀌게 되니 강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관계와 규범들, 나를 속박하던 것들이
어쩌면 자신을 자신으로 만들어 주었던 요소들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여행자에게는
침묵과
피상적인 대화들만이 남습니다.

그렇기에 여행자는
새로운 만남에서
새로운 장소에서
매일매일의 새로움 속에서
'나'이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새로움 속에서 변치 않을 당신을 발견하기를
분순 물을 걸러내고 순수 결정을 만들듯
순수한 당신을 만나기를.
당신 자신을 믿기를.


3주 전 런던에서 영제와 
헤어지고 난 후 지금까지
벨기에 친구 집에서 한 주일,
네덜란드 친척 집에서 한 주를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프랑스 친구 집에 있구요.
감사하게도 잠자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등등 부족함 없이 받아가며
떠돌떠돌 여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다 문득, 
제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느끼기에
이건 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할 
'선’이라는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제가 이런 선을 받아도 되는 걸까.
이런 책임을 내가 이어받아도 되는 걸까.

물론 이전까지 이미 많은 것들을 받아왔지만
이렇게 덜컥 겁이 날정도로 와 닿지는 않았었습니다.

제가 살던 울타리를 넘어 받는 선,
'사회생활'이란게 이런건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다가왔달까요.
저 한 사람 작은 존재이지만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위씻기

지난 봄, 산촌에 나들이를 갔었다.
가족 동반 나들이었다. 
산촌에 가면 역시 나물을 캐야지.
한 바구니의 머위를 땄다. 이젠 머위를 씻을 차례.
음, 산촌이라 그런지 물이 정말 차가웠다.

나는 톰소여 꼼수를 발휘했다.
“얘들아, 우리 머위씻기 놀이 할까?”
아이들이 몰려왔다. 후후훗
나는 신나게 머위를 씻는 척 했다.
머위를 씻는 게 정말 즐거운 척 했다.
그러다 그만 머위씻는 게 정말 즐거워졌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 혼자였다.
어? 얘들아 어디갔니?




믿거나말거나한 이야기

이 이야기는 북유럽의 전설인데
세상 끝에는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대.
걸을 수 있는 만큼 걷고 
가볼 수 있는 데까지 간다면 
만날 수 있는 강이라나.
왠지 약장수 약 파는 이야기 같지만
이 강을 건너는 자는 
진정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새로운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그래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강을 동경하고 꿈꿨다지.
그리고 드디어 발견한 그 강,
세상 끝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아름답다지.
그런데 멀리서 바라볼 땐 아름다웠는데
막상 발을 담그려 할 때는 두려움이 돋는다지.
왜냐면 한 번 건너면 다시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올 수 없다나 뭐라나.
그래서 익숙한 장소에 머무느냐
불확실을 받아들이고 강에 발을 담그느냐.
그런 강이 있다지.
전설로 내려오는 아름다운 강.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만나 평생 서로의 반려자가 되는 것도
자식을 낳고 그 부모가 되는 것도
이 강을 건너는 것과 같지 않을까?

나같은 어린애는 모르는 세계에 살고 있는 
재봉아, 희라야

남자는 여자를 위해 이렇게 
살아야하는구나를 가르쳐준 친구 재봉아
여행간다고 집에 초대해 삼계탕 
끓여준(요리는 재봉이가했지만) 희라야

1년 전 오늘, 두사람의 결혼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옹

결혼 1주년,
임신 축하해




결국 볼 것이다 
우리 마음이 원하는 걸
결국 경험 할 것이다
우리 마음이 원하는 걸
무엇을 원할지는 우리의 선택.

핸들 꼭 붙잡으시
마음 꼭 붙자으시길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싶어하는지
진짜 자신을 알고싶다면,
가만히 혼자 앉아
들어보기.

사람은 채움을 향해 나아갈 때 
살아있음, 활력을 느끼는 게 아닐까.
빈공간을 넓히는 것, 
그것이 여행이 아닐까.

욕심과 번잡함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 무엇을 보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가만히
보기.


해발 2,875m의 트리운드. 이 산의 정상에서는 히말라야의 봉우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산을 오르는 길에는 거짓말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꼬부랑꼬부랑 산길을 여행하는 이를 돕는 요정이 있다는…….


그 길을 오르던 때의 일입니다. 저와 영제, 종학, 카롤린 이렇게 네 사람이 함께였죠. 아침 7시, 한산한 산길. 네 사람. 그리고 세 마리 개. 이 개들은 아침부터 어딜 가는 거냐. 그런데 한참을 가도 이녀석들 여전히 옆에 있습니다. 그네들도 산을 오르고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어느 순간 일곱 마리가 되었습니다. 7이라… 이거 뭔가 의미심장한 숫자인걸... 싶은 순간 희번뜩 트리운드의 요정 전설이 생각났습니다. 이 개들이 요정들이로구나! 과연 요정들의 활약은 눈부셨습니다. 인간 넷이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요정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길을 선택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따라가도 되는 걸까. 저는 자존심 빼면 시체인 인간, 호모 쁘라이드쿠스. 인간들은 주저했습니다. 개요정님들은 뒤를 돌아보며 (눈으로) 말했습니다. ‘컹컹, 빨리 안 오고 뭐하낫.’ 


 잠시 있다가 떠날 줄 알았는데, 개요정님들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여전히 그들은 함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숨겨왔던 비스킷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다시 걸었습니다. 우두두두. 개떼 소리를 들으며 저는 늑대 소년 모글리를 생각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요정님들이 (다행히) 늑대는 아니었지만, 모글리가 느꼈을 위풍당당, 이런 것이로구나. 가진거라곤 팬티 한 장뿐인 모글리가 뿜어내던 자신감의 근원을 알 것 같았습니다.


 "쟤가 대장 같은데?” 영제가 가리켰습니다. 일곱 요정님들 사이에서 덩치가 가장 크고 늠름했던 친구를요. 듣고보니 그랬습니다. 대장은 요정님들 간에 싸움이 나면 개소리로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무리 중 제일 앞서 걸었습니다. 털도 검은색. 개늠름했죠. 가히 대장이로구나. 이런 미세한 권력 구조를 발견하다니, 영제가 7년의 군 생활을 허투루 한 게 아니었습니다.


 놀멍 놀멍 가던 길. 개대장요정이 점점 뒤로 쳐지는 듯하더니 급속도로 지쳐갔습니다. 계속 쉬었지만 대장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죠. 대장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고 있었고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대장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제 응원과 독려는 오히려 대장을 죽음의 길로 이끌고 있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그만 걷게 해야겠다. 위협해서 쫓아 냈습니다. 하지만 대장은 몇 번이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포기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결국 제가 대장의 속도에 맞춰 함께 오르기로 했습니다. 느린 속도였습니다. 조금 걸었으니까, 쉬고, 이런, 우리 아까 물을 안마셨어! 쉬고, 여기 그늘이 있어! 쉬었습니다. 느리게 걷는 것도 기술이었습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있었던 군부대들은 벚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군대에서의 10년, 봄이 오면 벚꽃은 덧없이 피었고 또 졌습니다. 꽃을 보며 인생은 참 짧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은 제게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막을 수 있다면 댐이라도 세우고 싶었습니다. 시간을 나누는 법이 없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시간 없다’는 말이 입에 붙어 있었습니다. 언제나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는가', 저는 불안했습니다. 고인 물은 썩습니다. 흐르지 못한 제 시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정작 저는 인간과 소통하지 못하는 모글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집 덩어리의 이무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개대장과 저는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8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린 왕자가 물었습니다. “‘길들인다'는 게 뭐야?” 여우가 말했죠. "그건 너무 잘 잊히고 있는 거야.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지.”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여우는 말했습니다. "넌 내게 아직 다른 수많은 소년과 다름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널 필요로 하지 않지. 하지만 네가 만약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이 세상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여우는 계속 말했습니다. “네가 만약 날 길들인다면 내 삶은 환하게 밝아질 거야. 다른 모든 발걸음 소리와 구별되는 발걸음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걸음 소리는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 테지만 너의 발걸음 소리는 땅 밑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길 봐! 저기 밀밭 보이지? 난 빵을 먹지 않아. 그러니 밀은 내겐 아무 소용 없는 거야. 밀밭은 내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그건 서글픈 일이지! 그런데 넌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내게 너를 생각나게 할 거거든.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야...."


여우는 입을 다물고 어린 왕자를 오래오래 바라보았습니다. 


 헐떡이는 개대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벚꽃이 말해주려 했던 건 인생은 짧다는 말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벚꽃은 지금 사랑하라고 말한 것 입니다. ‘지금’이라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사람과 마음속에 있는 가치를 위해서라는 걸. 시간은 우리가 사랑한 존재들로 채워져 간다는 걸. 누군가에게 길들여짐으로 여우의 삶에 금빛 바람이 생겨났 듯, 삶에 풍요를 더해가는 것. 누군가와 시간을 나눔으로 무한의 ‘것'에서 유한의 ‘존재'가 되어간다는 걸. 우리는 서로에게 길들여지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걸. 그렇기에 시간은 소중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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